나라에 30조만 있으면 연말정산 폐지할 수 있나요?

      2017.02.25 09:00   수정 : 2017.02.25 09:00기사원문
누가 13월의 ‘월급’이라고 했는지 유언비어입니다. 연말정산은 근로자에게 먼저 떼어간 근로소득세를 다시 정확하게 맞추는 과정일 뿐입니다. 현재 세금제도 안에서 돌려받아야 하는 금액은 돌려받고 반대면 더 내면 그만입니다.

이익이나 손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금 항목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매년 들썩입니다.


매해 12월부터 2월까지 5000만 인구 중 무려 1700만 근로자와 130만 원천징수의무자(회사, 사업자, 지자체 등)는 이에 매달려야 합니다. 이때 세제혜택을 받는 것을 공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서류를 챙기느라 바쁩니다. 귀찮다고 가만히 있으면 갑작스러운 금전적 타격을 받습니다. 일방적으로 징수된 세금을 내고 조금이라도 돌려받기 위한 노력은 다수 국민 몫입니다. 연말정산이 말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국세청은 복잡하고 어렵다는 연말정산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용하려면 필수로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합니다. PC환경도 그에 맞춰야 하니 각종 보안 프로그램도 완벽히 설치해야 합니다. 접속을 위해서 몇 시간이고 대기해야 합니다. ‘간소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국민 반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편 국세청은 작년 말에 ‘근로자를 위한 연말정산 신고안내’를 만들어 홈페이지에 공개했는데 무려 PDF파일로 110장입니다. 필요한 부분만 찾아본다 하더라도 어렵습니다. 일단 세법에 관한 자료이므로 일상에서 쓰이지 않는 전문적인 단어와 표현이 많습니다. 각 공제 항목별로 변수가 많은 탓에 근로자 모두 세법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간소하거나 쉬울 수 없습니다.

공제자료 때문에 직접 기관에 방문해야 하는 머리 아픈 상황이면 눈치 보며 외출하거나 휴가를 써야 합니다. 아니면 업무시간에도 전화, 팩스, 복사기, 스캐너를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연말정산 때문에 전 국민이 야근을 하지 않는 이상 서로 일하는 시간을 쪼개 협력해야 합니다.

일해야 할 근로자가 연말정산에 매달리면 기업도 손해입니다. 이렇게 매년 소모적 활동을 하며 온 나라가 들썩인 후, 국가적 차원에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전체적으로 ‘0’을 맞추는 일에 측정 불가능한 막대한 유무형적 사회비용을 쓰고 있습니다. 줄여나가야 할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현 세제로는 아무리 전산 시스템을 개선해도 상황은 계속될 것입니다.

만약 근로소득세를 폐지한다면 연말정산을 할 필요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세금 자체를 내지 않으니 근로자는 공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기획재정부 자료를 보면 정부는 2016년에 근로소득세를 31조 걷었습니다. 근로소득세수는 가만히 있어도 매해 많이 늘어납니다. 2015년에 27.1조였던 것이 아무런 세제정책 변화 없이도 2016년에 14%(3.9조)나 증가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그 원인을 “근로자의 명목임금 상승과 취업자 수가 증가”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2008년에 근로소득세수는 15.6조였습니다. 그런데 8년 만에 두 배인 31조가 됐습니다. 이는 면세 기준 월급여액(현 106만원)만 차츰 높여 세수를 일정하게 유지만 해도 단계적 폐지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세수 확충을 위해 억지로 다른 세목에 손 댈 필요도 없습니다.

한편, 정부의 작년 국세수입은 2015년보다 24.7조원이나 증가해 ‘나홀로 호황‘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연말정산과 같은 국가적 사회비용 없이도 세수를 간접적으로 충당할 세목이 많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국세체납액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김현미의원이 전국 세무서 국세체납액을 분석한 결과 2011년부터 2015년에만 총 96조 4822억원이었습니다. 또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17일 지하경제 규모가 124조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 걷지 못하는 세금이 최대 27조에 이른다는 결과도 덧붙였습니다. 이 때문에 “월급쟁이 유리지갑만 털어간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꼭 연말정산 때문이 아니더라도 근로소득세 폐지는 그 자체로 경제 효과를 줍니다. 기업·정부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근로자 월급이 오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소비 촉진으로 경기에 즉각 활력이 붙습니다. 내수활성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른 세목으로 손쉽게 세수가 확보됩니다. 연말정산으로 인한 사회비용을 줄임과 동시에 정부가 부르짖는 경제활성화에도 적합합니다. 수년간 수십조 혈세를 쏟고도 신통치 않은 대형 정책들보다 현실적으로 보입니다.

사실 근로소득세 폐지 주장은 2007년도에 정치권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연말정산은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2007년에 한나라당 대선경선후보로 출마했던 원희룡 현 제주도지사는 근로소득세 폐지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주목적이 “내수를 살리고 기업 인건비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체적인 실현방안 자료와 함께 “미납세금·방치국유재산 관리를 강화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유럽 국가를 예로 들며 단계적으로 면세자 비율을 늘려 전체 근로자의 97.4%를 납부면제자로 만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또한 생계형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제 폐지도 함께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근로소득세는 아무도 건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단체들조차 조심스러워 하거나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연말정산에 관해서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의실천정책팀 관계자는 “연말정산 혼란을 이유로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늘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공제를 간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납세자연맹 관계자는 “우리나라 근로자는 미국, 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 비해 편하게 연말정산하고 있다”며 “(연말정산을 하면) 국민이 세법을 더 공부할 수 있고 자신이 낸 세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유럽 경제활성화 방안에 대해 “임금에 붙는 세금이 너무 높다"면서 "시민의 가처분 소득을 늘려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ohcm@fnnews.com 오충만 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