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산업, 파이 키우려면 할리우드식 스튜디오 시스템 도입 필요
2017.04.10 17:57
수정 : 2017.04.10 22:33기사원문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이 날로 높아지면서 '수출 효자'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지만, 드라마산업의 현실이 열악한 이유는 뭘까. 규모가 작고 자금력이 부족한 드라마 제작사들은 몇 개 안 되는 방송사의 편성과 제작비 수급에 목을 매야 하고, 그나마 전체 제작사 중 연간 2편 이상의 드라마를 제작하는 안정적인 업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한 수준이다.
운좋게 편성이 된다 하더라도, 방송사가 지급하는 제작비가 실제작원가에 못 미치는 경우 드라마 제작사는 PPL, OST 등 부가사업을 통해 부족한 제작비를 자체적으로 충당해야만 한다.
KDB대우증권의 '드라마, 비로소 시장을 만나다' 보고서에서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들이 협소한 국내 시장에 갇혀있다고 지적한다. 지상파 방송 3사에 편성되는 것만이 손익분기점을 넘길 기회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시장 왜곡이 존재해 드라마 제작사의 수익과 시가총액 규모가 인근 국가 대비 지나치게 낮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외주 제작시장 현황 조사 분석'을 통해 드라마 제작시 방송사의 제작비 조달 비율은 79.2%로, 외주제작사들이 협찬 및 간접광고 등으로 나머지 제작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의 드라마 제작사 매출 구조에서도 방송사의 평균적인 제작비 지원이 총제작비의 60~7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지난 2012년 방영된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20부작의 총 제작원가는 74억원으로 편당 제작비는 3억7000만원 수준이었다. 이중 방송사인 MBC가 지원한 제작비는 58억원으로 제작원가의 78.4%였다. 나머지 16억원은 드라마 제작사가 부가수익 사업이나 추가 판권 유통을 통해 확보해야만 한다.
2009년 KBS2에서 방영된 '아이리스'는 200억원의 제작비를 썼다. 드라마가 소위 '대박'을 쳤음에도 제작사는 이 드라마 제작으로 9억원의 손실을 입은 반면 방송사는 제작비의 16%를 주고 최초 방영권을 확보해 시청률 상승에 따라 64억원의 추가 광고 수입 등 총 141억원을 남겼다.
■"이제 방송사만 바라보던 시대 지나"
전문가들은 드라마 제작업계가 이제 더이상 방송사만을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조언한다. 방송사만 바라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방송과 통신, 온라인간 플랫폼 구분이 희미해지고 국가간 장벽이 낮아지는 현시점에서 드라마 제작사는 체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편성을 전제로 방송사에서 지급받는 제작비가 아닌 드라마 제작사 자체의 자본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게 되면 IP(지적재산권)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바탕으로 더 큰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작가와 스태프의 근로 환경을 포함한 드라마산업 생태계 개선을 기대해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들이 드라마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며 방송사에 콘텐츠를 납품하는 구조를 확립했다. 스튜디오 시스템은 스튜디오가 방송사와 제작사의 중간에서 방송사 편성, 제작 관리 등의 역할을 함에 따라 제작사가 방송사의 편성과 제작비 수급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된다. 결국 미국 드라마 스튜디오는 다양한 채널과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면서 제작물량을 늘렸고 이를 통해 경쟁력이 빠르게 커졌다.
좀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한국콘텐츠진흥원도 지난 2008년 발표한 '글로벌 미디어 기업 육성방안'을 통해 영세한 드라마 제작사와 방송사 등 콘텐츠 플랫폼 사이에 프로그램 기획 및 제작비 관리, 콘텐츠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를 육성하는 것도 양자간 규모의 격차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CJ E&M이 드라마사업본부를 분사해 드라마 전문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드래곤'을 만든 것도 이와 비슷한 시도로 업계는 보고 있다. 또 '태양의 후예'를 선보였던 영화제작사 NEW가 드라마 스튜디오 설립을 추진하는 등 국내 드라마 산업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핵심 콘텐츠 제작 역량을 확보한 제작사와 함께 전문화된 드라마 스튜디오가 콘텐츠 유통을 담당하게 되면, '레드오션'인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콘텐츠 유통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