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유망산업 집중투자보다 공정경쟁 틀 만드는 게 미래혁신"

      2017.04.24 19:11   수정 : 2017.04.24 22:47기사원문

'생산적인 경제, 포용적인 사회.'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의 어투는 단호했다. '양적 성장'만 추구하는 국가발전 시스템은 이제 끝났다는 뉘앙스가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성장을 지속하면서도 사회안전망을 늘리고 삶의 질을 함께 추구하는 사회로 나가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됐다고도 했다. 파이낸셜뉴스 주최 '제18회 서울국제금융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윤 대사는 지난 19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진행된 본지와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성장일변도의 경제사회 패러다임에서 웰빙, 인간 중심으로 변해야 하는데 늦은 감이 있다"며 "이익을 남기기 위해 부가가치를 높이기보다 비용 낮추는 데만 집중하는 '바닥으로의 경쟁' 분위기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은 이익이 안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제도와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윤 대사는 "일부 유망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보다는 공정한 경쟁의 틀과 보상체제를 만들었을 때 미래혁신이 일어난다"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반세계화는 성장일변도의 경제체제와 이로 인한 분배 악화의 반작용이었다며 이제는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공정하고 포용적인 경제사회체제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면서 개별 국가보다는 세계적인 문제나 흐름에 대해 연구를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나 미국 우선주의 등 반세계화 움직임이 득세하고 있다. 반세계화의 원인은.

▲세계화가 사회 전체에 총량적으로는 도움이 됐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에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세계 경제의 통합이 생산과 소비과정에서 효율성을 높이고, 평균적으로 일반적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이지만 혜택을 받지 못한 계층도 많이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무역의존도는 50% 정도인데, EU에서 영국에 의존하는 수출입은 3%밖에 안된다. EU에서 탈퇴하는 것이 영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줄거라 예상했는데도 국민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세계화뿐 아니라 기술혁신도 고용, 소득, 분배 등 사람들의 삶을 바꾼 큰 변혁이었다. OECD 자료를 근거로 하면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19%를 갖고 있고, 하위 40%는 전체 자산의 3%밖에 갖고 있지 않다. 소득과 부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교육 격차도 상당하다. 대졸자의 자녀는 60%가 대학에 진학했지만, 고졸 부모의 자녀는 15%만이 대학에 갔다. 그러다보니 세계화가 전체적으로 혜택이 비용보다 컸는데도 불구하고 일자리와 소득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 역시 성장 주도의 경제체제였다. 지금까지는 '파이(성장과실)'를 나누는 것보다 파이를 키우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기존과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가.

▲파이를 키우는 게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가치들을 희생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경제가 포용적이지 못해 어려운 사람이 많고 사회갈등이 심하면 개혁을 위한 공감대를 모으기가 그만큼 어렵다. 실업과 비정규직이 늘고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있어 경제성과를 보다 넓게 공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옛날엔 정부가 이끌면 국민들이 따라갔고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자리, 소득이 늘고 삶도 대체로 나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성장하기 힘들 뿐 아니라 성장해도 혜택을 공유하지 못하고 뒤처지는 사람이 많다. 분배뿐 아니라 삶의 질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일례가 최근 심각해진 미세먼지 문제다. 파리에서 출장 올 때 잠시 얘기를 나눈 비행기 승무원이 '다음 대통령은 환경문제 해결할 사람으로 뽑고 싶다'고 하더라. 영화 '곡성'을 보면 주인공의 딸이 '뭣이 중헌디' 라고 묻는 대목이 있다. 정책을 사람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춰야 한다. 발전목표의 방향성에 대해 국민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다가 '어! 가야할 산이 이 산이 아니라 다른 산이네' 이러면 국민 입장에서 힘이 들고 정책 신뢰도 손상된다.

―성장 중심의 경제는 끝났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발전수준을 감안할 때 성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성장과 다른 가치, 즉 'beyond GDP(GDP를 넘어서)'를 균형시켜 'GDP and beyond(GDP와 다른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방향)'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 잡힌 발전전략을 써야 성장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 OECD의 지배적 견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배, 삶의 질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그에 대한 국민의 갈증이 있다. 큰 방향이 바뀌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정부와 민간 등 경제주체의 생각과 일하는 방식이 사회변화를 따라가고 있는지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정부 역할과 관련해서 최근 기술 4.0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부도 2.0 정도는 되어서 정책과 제도를 경제사회 변화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특히 기존 발전전략의 유용성을 재검토해야 하며 삶의 질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교통 문제를 예로 들면 '사람들이 질서를 잘 지키면 교통 사망사고 안 난다.' 이렇게 접근하면 절대로 교통사고 사망률을 줄일 수 없다. 유럽에 인구 5만 이상 도시 중에서 5년 연속으로 교통 사망사고가 한 번도 안 난 도시가 16개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교통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 사람이 실수해도 주행속도, 도로체계, 안전시설 등이 중첩적으로 사망사고 가능성을 막아준다. 파리도 교통 패러다임을 바꾼 이후에 교통사고 사망률이 반 이상 줄었다. 앞으로 인구가 줄어든다 하는데 교통 인식을 바꾸면 1년에 2500명 정도 무고한 희생을 막을 수 있다. 이런 노력들이 성장에 부정적일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진다. 생각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책 바꾸는 건 그나마 쉽고 관행과 의식 바꾸는 건 정말 힘들겠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대통령선거 기간 중 성장과 삶의 질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복지와 교육의 질을 올리고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성장보다는 삶의 질에 초점이 맞춰지는 추세다. 'beyond GDP' 실현을 위해서는 증세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거론될 만하다. 우리 세입규모를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라 앞으로 서서히 늘어날 여지는 있다. 그러나 증세 문제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사안이다. 증세까지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기존 틀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서 제시하는 틀에 따라 우리 경제사회의 건강성을 점검해보고 부족한 것으로 드러난 부분을 중점 보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은 중장기적으로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삶의 다차원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며 아울러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늘리거나 사회안전망을 잘 갖추어놓는 것이 중요하다. 미래 성장을 위한 혁신 이라는게, 유망하다고 간주되는 몇몇 분야를 선정해서 집중투자하는 것보다 경제, 사회 전반적으로 공정한 경쟁의 틀을 만들어주고 사람들이 혁신했을 때 공정한 보상을 받는 시스템을 갖추면 된다. 지금은 그런 부분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큰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스웨덴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OECD 국가의 성공사례를 적용하면 어떤가.

▲다른 나라 사례를 참고하는 게 중요하지만 사람 얼굴 그릴 때 눈 예쁜 사람, 코 예쁜 사람, 이마 예쁜 사람 각각 가져와 하나로 합치면 피카소 그림처럼 이상한 얼굴이 된다. 우리나라 상황을 감안해 전체적이고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개혁의 방향성이 중요하며 투명한 의사결정구조 아래 국민참여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개혁 방향에 대해 입장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많은 국민들이 납득하는 이슈도 있다고 본다.

―한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경제사회 문제를 고치기 위한 구조개혁이다. 기득권,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지키려는 집단의 반대 때문에 개혁 노력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특정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제, 시장진입을 못하게 막는 규제들이 많지 않나. '동맥경화증' 같은 걸 풀어야 한다. 노동 개혁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노조가 전체 근로자의 7%밖에 대변하지 못 하고 있어 비정규직 등 근로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대다수 노동시장 참여자의 목소리가 개혁 논의에 반영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피해를 청년들이 떠안게 된다. 우리 경제사회 상황을 OECD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한국은 소득수준이 35개국 중 23위로 중하위권인데 노동생산성은 더 낮고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바닥이다. 상대적 빈곤율은 7~8번째로 높고 연금제도가 늦게 도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인빈곤율은 가장 높다. 정보통신기술(ICT) 부가가치와 학생의 학업성취도는 괜찮지만 장시간 근로, 성별 임금격차 등 근로여건이 취약하다. 초미세먼지 노출 순위도 바닥 수준이다.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경제지표는 대체로 양호하지만 사회지표는 대부분 취약하다.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하고 불합리한 기득권을 제거하고 경제사회의 활력을 높이는 데 구조개혁의 중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생산적인 경제,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pride@fnnews.com 이병철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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