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과 졸혼을 선언합니다"
2017.05.14 09:00
수정 : 2017.05.14 09:00기사원문
가정 내 불화나 갈등으로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부부들이 최근 들어 이혼 대신 졸혼을 고민하고 있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배우 백일섭이 40여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졸혼을 선택했다고 밝혀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사실 졸혼이란 단어는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간한 책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졸혼은 법적인 혼인관계는 유지하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꾸리는 부부관계를 의미한다. 결혼의 틀을 깨지 않으면서도 부부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어 이혼보다 위험부담이 적다는 평도 받고 있다.
서울 목동에 거주하는 졸혼 희망자 홍영희(가명·40)씨는 “회사 다니고 애들과 남편 챙기는 것도 힘든데 시댁식구들까지 가세해 날 너무 지치게 한다”며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남편에게 졸혼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졸혼 후 거주 방식은 서로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데 주로 별거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만나기도 한다. 이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우자와 분리된 삶을 살면서 상대방의 소중함을 느끼면 졸혼을 정리할 수도 있다.
졸혼에 대해 미혼남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미혼 직장인 이수현(28)씨는 “배우자와 더 이상 결혼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졸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며 “뜻이 맞지 않는 배우자와 여생을 괴로움 속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졸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미혼남녀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모바일 결혼서비스 회원 548명을 대상으로 졸혼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미혼남녀 57%가 이 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졸혼을 원하는 이유로는 ‘결혼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가 57%, ‘배우자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가 22%, ‘사랑이 식은 상태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 같아서’가 18%를 차지했다.
졸혼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주로 각자의 사생활을 존중하면서 싱글과도 같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하지만 결혼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결혼생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졸혼을 선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또한 부부지만 부부가 아닌 다소 애매한 관계로 정착할 가능성도 있다.
직장인 김유리(35)씨는 "친구네 엄마가 졸혼을 하셨는데 자식들을 통해서 배우자의 사생활을 다 파악하려고 하시더라"며 "본인들의 상황에 따라 부부일 때와 부부가 아닐 때를 나누기도 해 친구가 난감해 한다"고 전했다.
성공적인 졸혼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합의와 준비가 필요하다. 졸혼 후 서로에게 이성친구가 생긴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해야 할지, 함께 일군 재산은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