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신중현 "록에 한국 흥 얹어 해외에서도 통하는 코리안록 들려줄 것"
2017.06.01 20:24
수정 : 2017.06.01 20:24기사원문
"머릿속에 아직도 끝없이 많은 아이디어가 있어요. 단지 실행할 수 있는 통로가 있느냐의 문제죠.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 중입니다. 두고보면 곧 행보를 보일 겁니다."
한국 록의 살아 있는 역사. 노장의 눈빛은 여전히 초롱초롱 맑게 빛났다.
지난달 30일 서울 CJ아지트 광흥창에서 열린 '신중현 THE ORIGIN' 앨범 헌정식에서 만난 신중현은 "요즘 우리 젊은이들의 음악성이 엄청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며 "한국 록의 선두에 섰던 기타리스트로서 이제 이들에게 자신의 감각에 맞는 음악을 하도록 맡기는 동시에 저는 새로운 음악성을 발휘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6·25전쟁 이후 미군으로부터 이른바 '양키문화'가 들어오며 대중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1958년. 스무살 청년 신중현은 미8군 무대에서 월급 3000원을 받으며 음악을 시작해 그해 첫 음반 '히키신 기타 멜로디'를 발표한다. 그것이 한국 록의 시작이었다.
올해로 데뷔 60주년, 인생의 4분의 3을 기타와 함께해온 그의 인생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트로트 일색이었던 1960~70년대에 '한국적인 록'을 표방하며 스스로의 음악세계를 개척해온 그는 40여년 전인 1974년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앨범의 '미인'이라는 곡으로 당시 한국 총인구였던 3000만의 노래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이렇게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그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CJ문화재단과 후배 뮤지션들이 마음을 모아 이번 헌정앨범을 만들었다.
신중현은 "정말 과분한 것을 받은 것 같다"며 겸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엽전들 앨범은 당시 한국적 록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을 품고 만든 음반인데 이번에 많은 후배들이 이렇게 새롭게 자신의 색을 더해주니 참 좋았다"고 말했다.
60년 전 서구 음악 장르인 '록'을 한국의 음악과 결합시키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록이라는 장르가 가진 수용성에 대해 주목했다"며 "서양의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세계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으로서 록을 생각하고 거기에 자국의 문화를 얹어 교류하는 추세여서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록 음악 위에 우리가 가진 고유의 장단과 흥을 얹어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그의 꿈은 이내 현실이 됐다. 국내에선 1970년대 군사독재시절 정권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 것을 거부했다가 활동금지를 당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오히려 미국과 일본에서 신중현을 코리안 사이키델릭 록의 창시자로 인정하는 등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뮤지션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러한 그의 명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지난달 12일 한국인 최초로 미국 버클리음악대학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일이다. 신중현은 "버클리 음대 박사학위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며 "음악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세계가 받아들일 거라고까진 상상도 못했기에 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동시에 그는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나란히 했다는 것이 꿈 같은 일이라고 느껴졌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음악을 더욱 드러내야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말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그에게 10여년이 지난 올해는 새로운 비전의 한 해가 된 듯하다. 이를 통해 신중현은 팔순의 나이에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었던 선봉장의 기치를 다시 올리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요즘 세계적 추세를 보면 음악에 대한 진정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 그는 "그 가운데 인간적인 것을 더한 진짜 음악을 들려주는 일에 앞장설 생각"이라며 "기타리스트로서 진정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그를 통해 세계를 제패하는 일을 준비하는 중이고, 다 되어가는데 단지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블랙리스트로 젊은 뮤지션이 힘들었던 것을 보며 지난날이 생각났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나도 끊임없이 저항하고 투쟁하며 음악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젊은 후배들이 자유롭게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계속 조성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