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두 화백의 초심… "창작 멈추는 순간 작가가 아니야"

      2017.06.15 20:32   수정 : 2017.06.20 18:30기사원문




한국 미술계에서 동.서양을 대표하는 80대 중반의 두 화백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골프웨어로 유명한 슈페리어의 창사 50주년을 기념해 슈페리어 갤러리가 연 특별전 '초심(初心)'을 통해서다. 이 전시의 두 주인공은 바로 한국화가 민경갑 화백(84)과 서양화가 황용엽 화백(86)이다.

광복 직후를 기점으로 본격 시작된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60여년 정도로 추산한다면, 두 화백이야말로 한국 현대미술사를 오롯이 살아낸 산증인이다.

민 화백은 22세이던 1956년 제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최연소로 한국화 부문 특선을 수상하며 화단에 이름을 알린 후 지금까지 62년째 '자연과의 공존'을 화두로 수묵과 채색 표현을 아우르며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또 그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 미술계를 이끌어온 거목이기도 하다.

1931년 평남 평양에서 태어나 6·25전쟁 때 월남한 황 화백은 평생을 '인간'이라는 주제를 물고늘어진 작가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평양미술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10대 때부터 미술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 그러나 6·25전쟁에 참전하며 직접 목도한 참상이 잊혀지지 않아 1950년대 말 이후 이지러지고 왜곡된 인간 형상을 화두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를 그려왔다. '인간 내면의 깊이와 성찰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고민해온 그는 제1회 이중섭미술상(1989년) 수상자이기도 하다. 15일 서울 테헤란로 슈페리어 갤러리에서 두 화백을 만났다.

―이번 특별전의 타이틀이 '초심'인데 전시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민경갑(이하 민)=원래 전시 제목은 기획자가 붙이는 것이지만 맨 처음 슈페리어 갤러리에서 '초심'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할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를 생각하게 됐다. 또 나와 연배가 비슷한 황 선생과 함께 한다고 해서 더욱 공감이 되기도 했고. 초심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진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가운데서도 근본정신은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황 선생이나 나나 지금껏 그렇게 작품활동을 해왔기에 초지일관으로 해왔던 것을 사람들이 좋게 봐준 것 같다.

▲황용엽(이하 황)=사실 초심, 처음처럼 한다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거다. 지난 시간 일상을 살아오면서 화가의 길로 쭉 지금까지 걸어오게 된 것을 돌아보게 됐는데 보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 여생이 많이 안 남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 보태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젊은 날, 초심을 세웠던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면.

▲민=황 선생과 나는 걸어온 길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림이 마냥 좋아서 시작했던 마음은 같다. 6·25전쟁 이후 서울대 미술학부에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 합격해 다녔다. 학교에 와서 월전 장우성 선생을 만났는데 그분은 다른 사람이 스케치를 한 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달리 아무것도 안보고 그냥 일필휘지로 그림을 쓱 그리는데 '저것이 예술의 경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동양화를 하게 됐다.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다 2학년 때인가 국전에 입상하게 됐고 3~4학년 때도 상을 탔다. 그때 마음 속에 딱 20년만 열심히 하면 1인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근데 40대가 됐는데도 그렇지 않더라고. 그래서 20년 더 가보자 해서 60대가 됐는데 또 돌아보니 아직 갈 길이 멀단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또 20년을 더 가봐야겠다 해서 이제 80대가 됐다. 그런데 여전히 미완성이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혼자 고민하고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작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순간 그 직업을 잃게 된다"고. 바로 전직 작가가 되는 거지. 죽을 때까지 창작하지 않으면 작가가 아닌거다. 그건 그냥 화공이거나 환쟁이로 불릴 뿐인 거지. 화가는 참 힘든 직업이다. 기술자는 전기밥솥 같은 거 하나 개발해도 평생 먹고사는데 작가는 평생 창작해도 잘 못살아. 그러다 좋은 작품을 남기면 그때야 추앙받는 거고. 안 그렇소, 황 선생?


▲황=그렇죠. 나는 이북 태생인데, 처음엔 멋 모르고 그리고 만드는 것이 좋아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정치이념이나 그런 것 생각 안하고 평양미술학교 가서 시험 보고 학교를 다녔는데 어느 순간 이북에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와 교육하니 뭐가 많이 달라졌더라고.

이게 소비에트 스탈린 시대의 사회주의적 미술과 다른 게 러시아는 유럽과 가까이서 문명을 교류하며 미술의 역사가 시작됐는데 이북은 그냥 1인 독재체제를 위한 도구로 미술을 해서 학생들이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을 못받아 답답했다. 그러다가 6·25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근데 오자마자 바로 입대를 하고 참전을 해서 남한 분위기를 빨리 익히지 못하고 오히려 죽음의 고비를 계속 넘어야 하는 상황만 왔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극한상황을 여러 번 겪으면서 생존해왔으니 내 그림도 다른 소재를 택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학생 때부터 나 자신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어떻게 하면 내면의 형상을 보일 수 있을까 해서 결국 사람을 꼭두각시 같은 모습으로 그리게 됐다. 극한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하는 현실을 그리다 보니 우울하게 보이기도 하고. 근데 이젠 이것을 버리면 내것이 아닌 것 같다. 이제 그림 그린 지도 70년 다 돼 가는데 그 가운데도 아직 미완성인 작품도 있다. 민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그림은 항상 새로운 것을 얘기하고 창작해야 하니 언제나 미완성인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나한테 지금껏 그린 것 중에 어느 그림이 제일 좋으냐고 묻는데 난 솔직히 대답을 못하겠다. "아직도 가는 중이고 계속 그냥 그림을 그리는거죠"라고 말할 뿐이다.

―신념보다 트렌드에 더 민감한 작금의 세태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은.

▲민=조금 더 고급한 문화를 육성하고 대접해주는 문화가 됐으면 좋겠다. 팝 문화가 우리 본래의 문화는 아니지 않은가. 사실 따지고 보면 프랑스나 독일 같은 곳도 전후에 폐허가 되고 예술이 자랄 토양이 되지 못했는데. 그러니까 어쩌면 우리랑 큰 차이는 없었을 수도 있는 거지. 우리가 6·25전쟁만 겪지 않았다면.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해주고 해서 국민들이 예술을 알게 된 거 아닌가. 집 같은 걸 지을 때도 우리는 그냥 임시방편으로 무허가건물 짓는 걸 놔뒀는데 유럽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집을 지을 때까지 규제하고 그래서 100년 가는 집들을 처음부터 올렸다. 문화, 예술도 마찬가지인데 겉포장만 번드르르하고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그냥 일회적인 거다. 오랜 시간을 들여 예술가가 최대한 자신의 공을 들일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황=일반인들이 공감하는 예술이 팝업처럼 지나가는 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나쁘다. 창의적이고 앞서나가는 프론티어적인 예술을 개인이 일생동안 끌고 가는 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가 정책적으로 정리를 해야 그게 수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예술이 발전한다. 그리고 거기에다 대중의 안목이 높아지고 관심도 많아져야 한다. 아무리 예술을 해도 사람들이 관심 없으면 의미가 없다.

―앞으로의 계획은.

▲민=나는 아직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황 선생은 이미 이뤘지만. 한국화는 특히 사람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면 서양미술처럼 추상화다, 야수파다 이런 말을 못한다. 동양의 미술에 대한 철학이 서양보다 한참 일찍 성립됐음에도 말야. 크게 변한 게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내 작품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있는데 처음에 '자연과의 조화'로 시작해서 '자연과의 공존'을 말했고, 그 다음에 더 깊이 들어가서 '자연 속으로'를 말했다가 '무위(無爲)'와 '진여(眞如)'의 단계까지 왔다. 근데 올해부터는 이제 '절제된 공감주의'로 전환할 생각이다. 그 다음엔 뭐가 될지 모르겠다.
작품활동 시작한 지 60년이 지나면서 이제 뭔가가 나오는 것 같다.

▲황=아까도 민 선생이 얘기했지만 작품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순간 작가가 아니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할 수 있는 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릴 것이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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