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훈 교수, "조기진단과 치료가 필수인 폐동맥고혈압, 지역거점병원서 조기발견하세요"

      2017.06.28 16:09   수정 : 2017.06.28 16:13기사원문


"폐동맥고혈압(PAH)은 20년 전만 해도 진단 후 3년 안에 절반이 사망했고, 5년 생존율도 34%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0%를 넘어갈 정도로 치료성적이 좋아졌습니다. 명확한 심장질환이나 폐질환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숨찬 증상이 있다면 PAH를 의심하고 진단과 치료에 나서야 합니다."
김계훈 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28일 "폐동맥고혈압은 숨찬 것 외에는 특이한 증상이 없어 보통 발병 후 2.5~3년 이상 지나 뒤늦게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며 "세계보건기구(WHO) 분류 1~2기에 치료한 PAH 환자는 3~4기 치료 환자보다 생존기간이 의미 있게 연장됐다는 연구가 나와 있어 조기발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상현장에서 진단에 가장 유용한 것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의 임상적 의심이다. 김 교수는 "숨이 참, 경정맥 불거짐(우심방 압력 상승), 하지혈전색전증 빈발, 하지부종, 원인 모를 만성피로감, 운동능력 제한 등으로 찾아오는 환자 가운데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의사들이 폐동맥고혈압(PAH)을 의심하고 심초음파검사만 시행하여도 PAH를 비교적 쉽게 선별해낼 수 있을 것"이라며 "X-레이나 폐기능 검사로도 잘 설명되지 않는 호흡곤란 환자의 경우 반드시 심초음파 검사를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정상 전신 동맥의 압력은 수축기에 120mmHg, 이완기에 80mmHg 미만인데 비해, 정상 폐동맥 압력은 수축기압이 25mmHg 미만으로 매우 낮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고혈압이 전신 동맥의 수축기혈압이 140mmHg 이상이거나 이완기 혈압이 90mmHg 이상을 의미하는 것과 달리 폐동맥고혈압은 폐동맥의 평균혈압(안정시)이 25㎜Hg 이상인 것을 말한다.

폐동맥은 이름은 동맥이지만 구조나 기능은 정맥과 유사하여 매우 낮은 압력으로 전신을 돌고 온 혈액을 가스교환 (이산화탄소 배출 및 산소 흡입)을 위해 폐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전신 동맥에 비해 낮은 혈압을 견디도록 정맥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폐동맥에 높은 압력이 걸리면 직전 단계인 우심실에 과부하가 걸리고 점차 비대해지며 전신 순환계에 무리가 가서 숨찬 증상이 고착화되고 심부전으로 이어져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폐동맥고혈압(PAH)과 혼동되는 용어로는 폐고혈압, 폐성심(폐성고혈압) 등이 있다. 폐고혈압은 폐동맥 압력이 높은 상태를 총칭하며 크게 △PAH(특발성, 유전성, 약독성, 타질환 관련성) △좌심실질환으로 인한 폐고혈압 △폐질환으로 인한 폐고혈압(과거 폐성심과 가장 비슷한 개념) △만성폐색전혈전증으로 인한 폐고혈압 △원인 불명 폐고혈압 등으로 나뉜다. 가장 흔한 폐고혈압 원인은 좌측 심장에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들에 의한 폐정맥압이 증가되어 발생하는 경우다. 원인질환의 치료가 폐고혈압과 연관 합병증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PAH는 다른 흔한 폐고혈압의 원인들에 비해 적극적인 평가를 하지 않으면 조기에 진단하기 어려우나, 조기에 발견해 적극 치료하면 생존율이 크게 향상될 수 있어 조기발견이 강조된다.

PAH는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이 2~4년에 불과하고, 방치하면 심부전·폐출혈 등으로 돌연사할 수 있으며, 4기에 발견되면 6개월 후에 사망할 정도로 조기치료가 강조된다. 국내서는 3000~5000명의 환자가 존재할 것으로 학계는 추산하고 있다.

김 교수는 "PAH로 사망한 환자의 연령대는 40~50대가 다수를 차지한다"며 "이 연령대에 원인 불명으로 돌연사한 경우 PAH가 관여된 개연성이 적잖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직업상 장시간 서서 일해 혈전이 잘 생기거나,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아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기 쉬운 사람은 PAH를 주의해야 한다.

폐동맥고혈압의 발병요인 중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특발성이 40% 정도다. 경피증·류마티스질환·루푸스 등 결체조직질환으로 인한 것도 20% 안팎이다. 김 교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상당수 환자가 결체조직 과다증식으로 피부에 이상이 오고, 폐조직이 섬유화되며, 이런 양상이 전신화되기도 하는데 폐에 문제를 일으키면 폐고혈압으로 이어질 수 있어 류마티스내과·순환기내과·호흡기내과·심장소아과 간 다학제진료를 통한 PAH의 조기선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폐동맥고혈압(PAH)치료제로는 크게 △산화질소경로제(리오시구앗, PDE-5억제제 등) △엔도텔린경로제(옵서미트, 트라클리어 등) △프로스타이사이클린경로제(벨레트리 등)로 나눈다. 각각의 분자생리학적 경로로 폐동맥을 확장시켜 폐동맥압을 낮추는 데 목표를 둔다. 현재는 엔도텔린경로제가 주된 치료제로 쓰이고, 프로스타사이클린경로제가 2차적으로 복합요법에 활용되며, 산화질소경로제는 이들 치료제의 병용보조치료제로 개입하는 추세다.

김 교수는 PAH를 앓던 두 명의 임산부를 극적인 사례로 대비시켜 소개했다. 10여 년전 백화점서 근무하던 여성 점원은 우연히 PAH를 진단(당시 폐동맥압 70㎜Hg)받고 절대 임신하면 안된다고 권고받았으나 이를 경시하고 남자친구와 혼전 임신해 출산 도중 사망했다. 임신 등으로 폐동맥압이 장기간 80㎜Hg를 넘으면 심부전으로 사망할 수 있다.

또다른 여성은 임신 중 결체조직질환이 악화돼 50㎜Hg 수준이던 동맥압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우심실도 비대해져 위험한 상태에 놓였으나 순환기내과·류마티스내과·산부인과 등 관련 진료과 의사의 체계적인 관리로 무난히 출산에 성공한 사례다.

작년부터 폐고혈압 전문가들이 대한고혈압학회 산하에 폐고혈압연구회(회장 정해억 가톨릭대 교수)를 발족한 데 이어 오는 8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폐고혈압연구회는 △PAH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 △관련 치료제의 보험급여 등재와 약가 인하 △질병관리본부와 연계한 환자등록사업 △국내 실정에 맞는 치료지침 개발 등에 나설 계획이다.

김 교수는 "폐동맥고혈압(PAH) 관련 임상의들이 PAH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조기진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폐동맥압이 20~25㎜Hg인 경계성 폐고혈압 환자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거점병원에서도 PAH를 조기발견하고 주기적으로 치료하면 무난하게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의료인프라를 갖춘 만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방의 환자들이 힘들게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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