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이상이 미래에 묻는다, 제대로 살고 있냐고

      2017.09.18 17:59   수정 : 2017.09.18 17:59기사원문

10여년 전,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 최영섭 선생을 만나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그는 소리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온 우주 어딘가를 끝없이 떠돌아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인상적이었으나 머릿속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는데 최근에 본 연극 '20세기 건담기'는 그의 말을 다시 떠오르게 만들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모던보이 이상의 마지막 나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성기웅 연출의 이상, 박태원 모티브 4연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의 죽음을 1년여 앞둔 1936년부터 1937년 봄 사이 경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성 연출은 "당시 이상과 소설가 박태원이 자신들을 말로 많이 떠들어대는 사람인 건담가(健談家)로 자처하며 재미난 입담으로 주변 문인들을 웃기고 다녔다는 이야기에서 착상하게 됐다"고 밝힌바 있다.


연극은 이상과 박태원, 화가 구본웅, 소설가 김유정 등이 당시의 신문물인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4차원 라디오 기술을 통해 21세기, 즉 2000년대를 살고 있는 미래의 청중들에게 발신하는 '건담을 시작하겠노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지금으로 생각해보면 일종의 팟캐스트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녹음이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 조차 없는 마이크 앞에서 그들은 서로의 근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콩트도 한다. 또 자신들이 생각하는 미래에 대해 상상하며 떠드는데 그들이 상상하는 미래에 대한 모습은 디스토피아다. 파시즘이 득세를 하고 식민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한국, 심지어 이상은 미래인 1980년대 중반 자신이 화성으로 이주했을 것이라고 상상을 더해 말한다. 그가 상상하는 화성에서의 삶은 늙지도 않고 권태롭기 짝이 없는 삶이다. 그는 그의 상상 속에서 여전히 식민치하에 있는 구보 박태원에게 조선땅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냐고 묻는다. 물론 지금은 그가 상상했던 현실과 다르지만 이 질문에 대해 이 시대의 관객들이 어떤 답을 해야할까 고민하게 만든다.

군국주의로 치달았던 당시의 일본, 그 가운데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겪었을 패배주의와 초라한 현실이 녹아 겉으로는 화려하고 신나 보이지만 씁쓸함이 연극을 보는 내내 묻어나온다.
그래서 솔직히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노래하고 춤추지만 당시 죽을 병인 폐병을 앓고 있는 이상과 김유정의 마지막을 보면 오페라 라보엠 속 주인공들의 비극적인 삶도 겹쳐 보인다.
극속의 이상은 그럼에도 미래에 질문을 던지고 메시지를 보낸다. 이 시대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가운데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공연은 30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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