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인륜지대사가 아닌 현금지대사?

      2017.10.16 17:00   수정 : 2017.10.16 17:00기사원문
부모 자식 간의 인연처럼 하늘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을 천륜(天倫)이라 불렀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결혼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불린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말의 무게가 무색할 정도로 결혼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가벼워져 버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결혼이 점점 가벼운 무엇이 되어갈수록 결혼식은 오히려 성대하고 화려하고 무거워지고 있다. 정녕 시청광장 같은 데서 딸랑 증인 한 사람 대동하고 하는 간편한 결혼식은 하면 안되는 것일까. 결혼식이라도 스트레스 안 받고 치를 수 있다면 온갖 것으로부터 치여 사는 우리 청춘들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텐데 하는 생각에서 오늘은 간소한 결혼식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세계 각국이 다 그렇지만 인생의례 중 가장 화려하고 성대한 것은 역시 결혼식이다. 근데 이게 우린 좀 유난한 편이다. 우리나라 결혼식은 참 볼거리라면 볼거리다. 현대와 전통이 공존하는. 무언가 엄숙미를 주기 위해 그랬던 것 같은데 흰 면사포와 웨딩마치를 보면 이건 분명 서구식인데 뜻도 잘 모르는 사주단자, 폐백, 예단과 같은 전통요소들 또한 한몫을 한다. 애초부터 비용이 들게 틀이 잡혀버린 것이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재작년 결혼한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집장만 비용 빼고도 결혼식 한 번 올리는 데 평균 76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주택구입비까지 보태면 '에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집 한 채가 전부인 보통 가정에서는 두 자녀 결혼시키고 나면 아파트 평수를 줄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요즘 신조어로 '현금지대사(現金之大事)'라는 말이 있다 한다. 결혼은 목돈이 들기도 하려니와 신용카드도 잘 안 받아주는 특이한 시장이라 이렇게들 부른단다.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신랑 신부의 가족들까지 합세하는 각종 의사결정의 복잡성 때문에 누구에게 맡기기도 그렇고 당사자들이 주도하기도 그래서 한참 애물단지가 돼버린 게 우리나라 결혼인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두 남녀가 함께 살기로 하는 결정 자체가 갈등요소 천지인데, 결혼식 비용 분담 문제까지 가세하니 갈등과 후유증이 장난 아닌 것이다. 게다가 양가의 사회적 체면과 과시욕구에 기반한 의견조율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이런 일까지 부담을 가중시키니 결혼이라는 사건은 신혼남녀를 파김치로 만들기에 족한 무엇이 돼버렸다. 한 설문조사를 보면 결혼식 비용 중 나중에 제일 후회하는 비용은 비싼 예식장비와 예물가격이라고 한다. 결혼식이 점점 화려하고 복잡해질수록 청춘남녀들은 결혼할 엄두가 안 나는데 그 이유에는 당사자들이 아닌 혼주들 입장에서의 허례허식도 들어있다는 의미이다.


다행히 요즘은 '작은 결혼식'이라고 하여 경제적이면서 개성 있는 혼례식을 하려고 애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원빈과 이나영 커플의 '메밀꽃밭 결혼식'처럼 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에서 간소하고 정겹게 일생의 예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고, 공공기관에서 빌려주는 공간에서 간단한 음식만 즐기면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기부행사가 아닌 바에야 본인들이 즐거운 일에만 돈을 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절약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끔 이런 일도 우리 기성세대가 나서서 도와주었으면 한다.

이재인 전 한국보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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