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지호&발레리나 김주원 "연극계 이방인 같은 저희를 선택한 고선웅 연출가가 대단"
2017.10.18 16:51
수정 : 2017.10.18 16:51기사원문
배우 오지호와 발레리나 김주원. 각각 자신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뤄온 두 사람을 낯선 연극계로 이끈 이는 다름아닌 연출가 고선웅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감성 짙은 프랑스 멜로 영화 '라빠르망'의 라이선스를 들여와 연극 '라빠르트망'으로 각색하면서 주인공 막스와 리자 역에 이들을 낙점했다.
18일 저녁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서 열린 첫 공연을 앞두고 두 배우를 만났다.
―둘 다 연극 도전이 처음인데 작품 선택 계기는.
▲오지호(이하 오)=연극 무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 있었는데 두려움도 그만큼 컸다. 나이가 마흔이 넘고 영화와 드라마에서 20년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연극 무대는 여전히 오지와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론 앞으로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매번 비슷한 배역이 이어져 오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5월에 처음 고선웅 연출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고 고민 끝에 이 연극이 최적의 선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금과 좀 다른 오지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잘한 선택인 것 같다.
▲김주원(이하 김)=관객으로 늘 고선웅 연출의 작품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올해 초 우리나라 무용계의 전설인 최승희를 모티브로 작품을 만들고 싶단 생각에 먼저 고 연출께 연락을 한 게 시작이었다. 그 작품을 제작하는 것에 대해 공감대를 나누다가 어느날 고 연출이 '그 전에 연극 한편 하자'고 제안했다. 연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제가 무대에서 입을 열면 개그가 될 수 있어요. 모험이 아니냐' 했는데 고 연출이 '연습하면 할 수 있다'고 강권하시더라. 그러다 나도 궁금해졌다. 춤은 몸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데 언어로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공부하고 싶어져서 시작을 했는데 제 생각엔 연습기간이 짧게 느껴졌다. 무대에서 발레리나 김주원이 아닌 배우 김주원으로 어떻게 보여질 수 있을까 새롭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기다려진다.
―처음 도전하는 연극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오=많죠. 저희는 사실 이방인 아닌가. 계속 연극을 하던 동료들한테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 많이 했다. 같이 출연하는 선배, 동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김=오지호씨도 연기 베테랑이다. 나는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연습하며 평생 내본 적 없는 큰 소리도 내보기도 하고. 대사의 발음과 톤도 배우고 연습 중간에 즉흥극을 시키기도 하는데 화내는 연습도 시키더라. 같이 하는 배우 동료들을 비롯해 주변이 온통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연극에 도전하면서 색다르게 다가온 점은.
▲오=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번 하고 흘려보내는데 연극은 같은 대사와 연기를 계속 반복해야 하지 않나. 발성부터 동작까지 모든게 새롭다. 또 카메라를 통해서는 클로즈업을 통해 관객과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지만 연극에서는 내 연기와 움직임을 통해 시선을 끌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관객들 앞에서 직접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선 여전히 두려움이 남아있지만 이번 연극을 통해 작품 속 인물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
▲김=연극, 너무 매력 있다. 춤은 모든 장르의 공연을 다 해봤다고 말할 수 있는 나였는데 연극이란 장르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세상이더라. 무대에서 프로로 20년을 서왔기 때문에 이제는 나에게 어떻게 해라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외국 안무가의 신작을 새로 습득하는게 아니면 오히려 저는 가르치는 입장이었는데 여기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디렉션을 받는 입장이 돼 오히려 새롭고 재밌었다. 연극을 앞으로도 계속할지 안할지는 이 공연을 지나봐야 알 것 같다. 이번 연극을 도전하면서 춤을 추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 앞으로 춤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오=고 연출이 김주원씨한테 춤추는 법도 가르치더라. 하하. 고 연출이 대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수에게 무용을 가르치다니.
▲김=고 연출이 '난 안무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알려주시더라. 하하. 근데 재능이 있으시다. 의자를 만진다든지 상대 배우를 대할 때 동작이 섬세하고 디테일이 있어서 나도 깜짝 놀라곤 한다. 몸소 보여줄 필요 없는데 다 보여주신다. 너무 재밌게 배우고 있다.
―현재 자신의 모습과 각각의 캐릭터 간 싱크로율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오=100%에 거의 도달한 것 같다. 인터뷰할 땐 오지호지만 연습실과 무대에 서면 그냥 막스가 되어 있다. 그래서 죽을 것 같은 절실한 감정도 들고. 대본 넘어 디테일을 살리고 있는 중이다.
▲김=오지호씨는 너무 잘한다. 어떤 배우보다 여유롭고 그만의 스타일이 나오더라. 막스에 최적화돼 있다. 고 연출이 저를 캐스팅할 때 사람들이 갸우뚱했지만 오지호 배우를 선택했을 때도 그랬던 걸로 안다. 근데 이제 와 보니 고 연출이 막스로 왜 오지호 아니면 안된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나쁜 남자 막스에 딱이다. 제 캐릭터를 놓고 보자면 저는 아직 100%가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리자라는 캐릭터가 어떤 틀 안에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거에 춤을 출 때도 공연 전부터 100%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틀을 정해놓고 캐릭터로 들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본능적으로 하다 나온 것이 있는데 연극도 그런 것 같다. 공연을 하는 동안 좀 더 무대에서 자유로워지고 극에 빠지면 상상 이상의 리자가 나올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김=앞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고 계획을 세워서 살았다기 보다 지금껏 물 흐르듯 살아왔다. 인연이 있고 작품도 운명이 있다 생각한다.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3주간 무대에서 리자로 살다보면 또 운명적인 인연과 작품이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극이든 춤이든.
▲오=이 작품 재연을 한다면 또 할 것이다. 재연도 재연이지만 이걸 들고 프랑스에 가서 하는 상상도 한다. 원작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모니카 벨루치, 뱅상 카셀 앞에서 하면 재밌을 것 같다. 자기 영화를 먼 타국의 동양인들이 와서 연극으로 보여준다면 그들도 신기해할 것 같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