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라더’ 스테디셀러 뮤지컬의 영리한 영화적 변주

      2017.10.18 18:20   수정 : 2017.10.18 18:20기사원문


수많은 콘텐츠들이 범람하는 현 사회에서, 창작의 결과물들이 무한한 차별성을 가지고 대중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란 쉽지가 않아졌다. 독보적인 소재에 대한 갈증을 느낀 일부 창작자들은 기존의 것을 조금씩 변주시켜 새로운 영역 및 장르로 확장시켰고, 거기서 가지를 친 새로운 콘텐츠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최근 영화 산업 역시 이러한 방향이 주가 되고 있는 게 실상이다.


원소스멀티유즈(One-Source Multi-Use)를 보다 더 상호보완적으로 활용시키기 위해선 단순한 변주보다 해당 시대 및 상황, 문화 등에 따라 폭넓게 각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이러한 가운데, 2007년 초연한 국내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장유정 연출)를 원작으로 차용한 영화 ‘부라더’(감독 장유정)는 뮤지컬이라는 본 장르의 매력을 십분 살리면서도, 유려한 진화를 거듭했다.

인디아나 존스를 꿈꾸며 유물발굴에 전 재산을 올인 하지만 현실은 늘어나는 빚과 쓸모없는 장비뿐인 형 석봉(마동석 분). 가문을 대표하는 눈부신 외모와 명석한 두뇌로 잘 나가는 건설 회사에 다니지만 순간의 실수로 실직 위기에 처한 동생 주봉(이동휘 분).

두 형제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안동의 뼈대 있는 집안의 차종손이지만 고향을 극도로 싫어하면서 사이마저 달갑지 않다. 그런 두 사람이 3년 만에 본가를 찾게 된 이유는 아버지 춘배의 장례 때문. 집안의 보물들을 훔쳐 기어코 한 몫 해먹겠다는 석봉과 도로 공사 허가를 받아 승진을 노리는 주봉의 티격태격 우격다짐은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그들 앞에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여인, 오로라가 등장하면서 놀라운 진실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뮤지컬이 원작인 만큼 ‘부라더’의 형식 역시 철저히 무대 위에서 펼쳐지기에 좋은 설계를 지녔다.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많은 뮤지컬 특성상 영화적인 허용을 뛰어 넘는 경우가 많다. 빠른 전개, 약간은 과하다 느낄 법한 연출이 주를 이루는데, ‘부라더’는 그것을 고스란히 가져온다. 연극적 구성이 익숙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설 법 하다. 하지만 이를 미리 인식하고 감안한다면 뮤지컬 장르의 활기찬 톤과 코미디 영화의 시너지를 느끼기엔 제격이다.

호불호 관객을 한데 모으는 건 새로운 흥행 요정, 마동석의 공이 거대하다. 액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코믹은 더 잘하고 눈물 뽑는 건 더 잘한다. 석봉을 연기하는 마동석을 보고 있자면, 이 배우가 지닌 페이소스의 진가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우락부락한 근육에 큰 표정 변화는 없지만 눈으로 감정을 토해낸다. 마동석표 코미디는 어떠한가. 마동석이 어떤 말을 해도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분명히 그가 해당 대사를 내뱉을 것이라 예상이 가는데도 불구, 표정과는 영 아이러니한 대사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동휘도 마동석에게 결코 지지 않는다. 특유의 능청스러움으로 그의 말을 모두 받아치며 속도감 있는 핑퐁 호흡을 자랑한다. ‘안동 최고 잘생긴 미남(?)’을 연기한 만큼 기존 이동휘가 연기한 다수의 캐릭터보다 낮은 톤을 보이기도 해,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하늬가 연기한 오로라 캐릭터는 독보적이다. 보통 묘령의 여인이라 하면, 어딘가 기묘하고 신비롭고 음산하면서도 한기를 느끼게끔 이미지가 구축되지만 오로라는 정반대다. 미친 듯이 발랄하고 미친 듯이 웃다가도 세상에서 제일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그야말로 ‘이상한 여자’다. 영화 및 드라마뿐만 아니라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 ‘시카고’ 등 다수의 공연에서 차곡하게 내공을 쌓아온 이하늬가 스크린 연기톤과 제대로 버무려 독특한 오로라 캐릭터를 기시감 없이 완벽히 소화한다.
이외에도 장유정 감독은 인물 한 명 한 명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충무로 대세 신스틸러로 꼽히는 조우진 옆에서 더 날아다니는 배우가 있으니, 뮤지컬배우 송상은이 그 주인공이다. 어린 나이에 종갓집 며느리로 시집 와 꽉 막힌 집안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어른들 앞에서는 차분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매력적인 캐릭터다. 송상은은 귀여운 야누스적인 면모를 찰떡 같이 흡수하며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극 말미에 등장해 객석을 술렁이게 했던 젊은 춘배 역의 지창욱부터 오만석, 서예지, 김강현, 최지호 등 작은 역할의 배우들도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기분 좋은 앙상블을 펼친다.

전체적인 틀은 원작을 차용했지만 ‘부라더’는 코믹 영화와 감동 서사의 무게중심을 맞추기 위해 세부적인 부분은 적절히 수정됐다. 오로라의 직업이라든지 반전을 그리는 도구, 결말 등 꽤 많은 부분이 변했다. 그럼에도 뮤지컬이 관객에게 전했던 그 진심은 스크린으로 옮겨와서도 오롯했다. 또한 뮤지컬이 웃음으로 시작해 담담한 결말로 감동과 여운을 함께 흩뿌렸다면 영화는 두 가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한다. 그러면서도 끝은 말끔한 코미디로 매듭을 지으면서 장르에 철저히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더불어 ‘부라더’가 지닌 미덕은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 관객을 지나치게 훈계하거나 대놓고 주제 의식을 펼쳐내는 등 직관적으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 사회에서 타파해야 할 지독한 관습으로 재평가 되고 있는 가부장제, 제사 의례, 전통 문화 등을 영화의 줄기로 잡았지만 장유정 감독의 말처럼 웃음과 눈물 속에 적절히 혼재시켜 무겁지 않다. 그로 인해 어머니 및 여성으로서 겪어야했던 비애는 자연스럽게, 진하게 다가온다.

‘부라더’에 자극적인 요소들이나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전개는 없어 밋밋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상적 상황에서 주는 웃음과 감성이 피로감에 휩싸인 관객들을 잠시나마 달랠 전망이다. 오는 11월 2일 개봉 예정.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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