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중인 일본 편의점 ‘사고·보고·뽑고·타고·빨고·없고?’
2017.11.25 11:00
수정 : 2017.11.25 11:00기사원문
수많은 관광객들이 일본에 와서 가장 놀라는 곳 중 한곳은 바로 ‘편의점’입니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에 ‘일본편의점’을 검색하면 ‘일본 편의점 이건 꼭 먹어봐야해!’라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본 여행을 앞두고 한번쯤은 모두 검색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일본의 편의점은 슈퍼마켓을 방불케 할 정도로 먹거리가 가득합니다. 편의점 음식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인 디저트들과 식당 음식을 방불케 하는 도시락, 유명 베이커리를 연상케 하는 빵들은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이 지갑을 열도록 유도합니다.
일본은 한국 같이 배달음식 문화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편의점 때문에 배달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집 앞에 뭐든 다 파는 편의점이 있기에 굳이 배달료를 지불하면서 배달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편의점 한켠에는 각 종 잡지들이 즐비하게 놓여있습니다. 평일 점심에는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사면서 혼자 점심을 먹으며 읽을 잡지를 구매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처음 편의점 잡지 코너를 봤을 때 선정적인 잡지들이 아무렇지 않게 진열된 모습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아이들이 오는 편의점에서 그라비아 모델들이 야한 포즈를 한 잡지를 취급한다는 게 왠지 낯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그 풍경도 이제는 사라질지 모릅니다. 유통업체 이온은 미니스톱 등 산하 편의점 체인 7000개 점포에서 내년부터 성인 잡지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지난 22일 선포했습니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의 이미지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라 합니다. 이온에 따르면 일본 편의점에서 성인 잡지의 판매액은 전체 잡지류 판매액의 5%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진이 높은 까닭에 편의점 점주들은 성인 잡지 판매를 선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온의 정책이 성공해 다른 편의점들도 성인 잡지 판매를 멈출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 편의점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은행 업무를 포함한 각종 금융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기세, 수도세 등의 각종 공과금을 편의점에서 납부할 수 있고 자동차 보험이나 자전거 보험 등을 취급하는 곳도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까지 편의점에서 내는 상황이니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하루 24시간 영업을 하는 편의점이기에 업무를 마치고 들려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모바일뱅킹과 인터넷뱅킹의 사용률이 저조한 이유가 편의점 뱅킹 업무 때문이라는 지적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은행 업무에 가장 앞서 있는 것은 ‘세븐일레븐’이라 생각됩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세븐뱅크’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편의점 외에도 지하철, 마켓, 상가 등 사람 왕래가 잦은 곳이면 영락없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예금과 출금, 송금, 환전 등을 아무데서나 손쉽게 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합니다. 최근에는 ‘로손’도 은행업에 진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내년에는 ‘로손뱅크’의 ATM도 곳곳에서 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존, 타워레코드, HMV 등 온라인마켓을 통해 물건이나 각종 이벤트 표를 살 때도 편의점은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일본은 무척이나 보수적인 나라로 신용카드 발급이 매우 어렵습니다. 웃픈 소리로 주일한국대사관 직원 중에도 신용카드를 발급 받지 못한 분이 계실 정도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온라인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편의점을 통해 물건 값을 지불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충분히 다채로운 모습을 지닌 일본의 편의점들은 최근 다시 진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세븐일레븐은 자전거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이동통신사 NTT도코모와 손잡고 도쿄 인근 32곳 매장에서 150대의 공유 자전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좋았는지 세븐일레븐은 판을 더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손정의 사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지난 21일부터 도쿄 북부 사이타마 지역 편의점 9곳에서 새로운 자전거 공유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세븐일레븐은 ‘2018 회계연도’ 말까지 편의점 1000곳에 자전거 5000대를 배치할 계획입니다.
패밀리마트도 이와 유사한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시작단계라 규모는 아직 작지만 야심차게 시작했습니다. 패밀리마트는 여기에 한술 더 떠 동전빨래방까지 편의점 안에 만든다고 합니다. 오는 2019년까지 500곳에 동전빨래방을 만들겠다고 지난 24일 선포했습니다. 일본 전체 1만8000 점포 가운데 주차장이 있는 1만2000 점포를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늘려갈 방침이라 합니다.
로손은 아마존고(Amazon Go)와 같은 자동결제 시스템을 갖춘 무인편의점을 꿈꾸고 있습니다. 고객이 물건을 들고 나가면 사전 등록된 계좌나 카드로 물건 값이 청구되는 시스템입니다. 이외에도 인간형 로봇을 진열대에 배치해 물건들의 원재료를 설명해 주는 방안도 구상 중입니다. 다케마스 사다노부 로손 사장은 KBS와 인터뷰에서 “첨단 기술을 활용해 점포를 효율화 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JR동일본은 오는 26일까지 사이타마시 오미야역 내 편의점에서 무인점포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교통카드 ‘수이카(Suica)’를 입구에서 찍고 들어가 물건을 고른 후 나올 때 다시 찍는 구조입니다. 긴 통로 모양으로 생긴 매장 곳곳에는 인공지능(AI)의 눈 역할을 해주는 각종 카메라가 장착돼 고객이 어떤 물품을 얼마나 구매하는지 파악한다고 합니다.
일본 편의점들이 변화를 선택한 이유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 때문입니다. 1인 가구 증가로 자연스럽게 ‘소유’에서 ‘공유’로 바뀐 소비문화에 맞춰 기업들도 변화하는 것입니다. 또 인건비는 급격히 오르는데 막상 일할 사람은 구해지지 않자 기업들이 어쩔 수 없이 내놓는 대책이기도 합니다. 진화하는 일본 편의점을 보면 머지않은 한국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집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