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따로 또 같이'

      2018.03.01 16:58   수정 : 2018.03.01 16:58기사원문

지난해 2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야당인 노동당 제러미 코빈 당수가 의회에서 맞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초청 문제가 첨예한 이슈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메이 총리가 미국 방문 시 전달한 국빈방문 초청을 수락한 바 있다.

이후 영국에서는 트럼프의 무슬림 이민금지 행정명령 등을 계기로 반(反)트럼프 정서가 확산했다. 코빈은 국제협약을 무시하는 트럼프의 일방주의를 공격했다.
고문을 찬양하고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는 트럼프에 대한 비난도 있었다. "트럼프가 뭘 더 해야 총리는 그의 국빈방문 초청을 철회하라고 서명한 180만여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까?" 코빈의 공세에 메이 총리는 당당하게 대꾸한다. "야당의 외교정책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가장 중요한 우방의 국가원수를 반대하고 모욕하는 것이군요." 노동당이 집권했다면 트럼프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메이의 반격이 이어진다. 인상적인 대목은 이것이다. "그가 항의(시위)를 이끌 수는 있지만, 나는 나라를 이끌고 있습니다(He can lead a protest, but I'm leading a country.)" 이런 말도 있다. "정부의 할 일은 거리를 점령하는 게 아닙니다. 영국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유튜브에 있는 영국 의회 동영상은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한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극심해진 남남 갈등 때문이다. 일찌감치 '평양 올림픽'으로 규정하고 현송월, 김여정을 마뜩잖게 바라보던 한국당은 김영철의 방문에서 폭발했다. 천안함 사건 배후에 김영철이 있다는 시각 때문이다. 야당의 반대에는 천안함 유족과 일부 시민도 가세했다. 야당은 말 그대로 거리를 점령한 채 시위를 벌였다. 김영철 일행의 우회와 역주행 등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야당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앞으로 남북대화가 이어질 경우 정치권의 갈등은 더 격화될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평창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미·북 대화가 성사되기까지 정부는 고난도 방정식을 풀어내야 한다. 북한 비핵화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할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점점 심해지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이대로 방치한 채 힘 있는 정책 추진은 어렵다. 무언가 해법이 있어야 한다. 일단 여야 정치권이 일종의 역할분담론으로 서로를 바라보면 어떨까. 김영철 방문에 대한 야당의 항의조차 없었다면 그것도 문제였을 것이다.

영국 의회의 풍경은 이 점을 깨닫게 해준다. 국가적 이익을 위한 정치인의 역할분담이다. 야당인 노동당은 항의만 해도 된다. 비판을 강하게 할수록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200만명 가까운 시민이 트럼프 반대 서명을 하지 않았는가. 일부라 해도 영국인들의 정서를 트럼프와 미국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반면 집권당 혹은 집권자는 국가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항의와 비난만으로 국가를 이끌 동력을 얻을 수는 없다. 메이 총리 역시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가장 중요한 우방으로서 미국과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영국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청와대가 야당과 대화의 자리를 가지려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다행스럽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긍정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 파트너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다. 여당은 야당의 반대 역시 필요한 부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야당 또한 국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에 더 큰 고민이 있을 수 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 좋은 모양새만 연출할 필요도 없다. 때로 격렬한 토론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은 메이 총리의 말을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야당은 항의를 이끌 수 있지만, 여당은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 그런 인식이 남북, 미·북 대화에 앞선 남남 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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