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하려면 제대로 하자

      2018.04.03 17:30   수정 : 2018.04.03 17:30기사원문

본격적인 개헌 토론의 장이 마련됐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자유한국당도 자체 개헌안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개헌 논의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조문화된 헌법안을 놓고 구체적인 논쟁을 벌인 적은 없었다.

국민투표도 시기 선택만 남은 듯하다. 새로운 헌법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문 대통령의 개헌 발의는 그런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압박이 없었다면 야당이 개헌안을 내려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는 선거가 우선일지 모른다. 국민에게는 개헌이 그보다 백배나 중요하다. 말 그대로 국가백년 대계의 틀을 만드는 중차대한 작업이 개헌이다. 정치권은 이제 상호비난 대신 최상의 대한민국 미래 설계도를 만드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좋은 헌법이 좋은 나라를 보장할 수는 없다. 남쪽의 귤이 북쪽에서는 탱자가 되기 십상이다. 정치적 토양을 무시한 채 제도만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은 헌법 탓이 아니다. 나는 헌법대로 하지 않는 정치가 헌법보다 더 큰 문제라고 말해 왔다. 대표적인 게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이다. 있지만 없는 척, 없지만 있는 척하는 위선적 제도다. 현행 헌법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국무위원을 임명하도록 규정한다. 헌법대로 총리가 실질적으로 제청한 국무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했다면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사례는 우리 헌정사에 없었다. DJP 연합 정부에서 JP 총리가 일부 자기 몫 국무위원을 확보했을 뿐이다. 결국 총리의 제청권은 있으나 마나 한 형식적 권한이다. 총리가 유명무실해지는 것도 상당 부분 그 때문이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으로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위상이 같아야 한다. 대통령제는 국회를 상대로 설득과 타협 등 직접 정치행위를 하는 대통령을 전제로 한다. 총리는 이런 대통령을 대신해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과 동렬에 놓이고 대통령은 3권 위에 군림하게 된다. 권한은 형식적 총리지만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혼합한 정치체제는 제헌헌법부터 존재해 왔다. 의원내각제 헌법을 마련한 유진오 안에 대해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고집했다. 초안에 연필로 줄을 긋고 30여분 만에 고친 정치적 야합으로 대통령·부통령·국무총리가 함께 존재하는 기형적 제도가 탄생했다. 기왕 헌법을 새롭게 만들려면 총리의 존재부터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은 총리의 국정통할권에서 '대통령의 명을 받아' 부분을 삭제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개선을 위한 일보 진전이지만 형식적 존재로서 총리의 위상은 여전하다. 한국당 개헌안은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총리 권한은 강화되겠지만 직선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하는 방안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다른 당 출신으로 대립할 경우 국정이 마비될 수 있다. 현재보다 더 작동하지 않는 국정운영 방식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4년 연임제 등을 채택한 대통령 개헌안은 대통령제에 가깝게 가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리제를 폐지하고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정.부통령제를 채택하는 게 정도다. 철저한 삼권분립과 상호 견제, 균형의 원리를 복원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국무위원의 겸직 금지도 대통령제의 당연한 원칙이다. 개헌안에 반드시 관철돼야 한다. 다른 여러 제도도 대통령제와 3권 분립을 기초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제도가 능사는 아니지만 반드시 지킬 수 있는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그대로 둔 채 어정쩡한 타협으로 그칠 바에는 개헌은 않느니만 못하다.
대통령제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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