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고독에 갇힌 노인들..쓰레기더미가 유일한 위안
2018.05.06 17:39
수정 : 2018.05.06 17:39기사원문
권모 할머니(84)는 자신의 키보다 높이 쌓인 종이상자와 플라스틱, 병 더미를 헤치고 문을 나섰다. 할머니 집은 26㎡(8평)가량, 방 하나 화장실이 전부다. 현관문까지 쓰레기가 가득 찼다.
■노인 "쓰레기는 내 재산"…청소 반대
6일 일선 지자체 등에 따르면 고령사회에 들어서면서 집안 가득 쓰레기를 쌓는 독거노인들이 있다. 쓰레기집은 사회관계 단절에서 비롯되는 노인 문제로, 이들 중에는 쓰레기를 재산처럼 생각해 지자체의 복지서비스를 거부하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전문가들은 쓰레기집 원인을 노인의 살아온 배경에서 찾는다. 산업화 시기 가난을 경험한 탓에 함부로 물건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폐지를 수집하다 신체적 노쇠로 처리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심리적 이유도 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은 "저장강박은 사회적 고립 속에 생존해야 한다는 불안 및 우울과 관련이 있다"며 "주로 중년 이후 발병하고 심각성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쓰레기집은 악취 민원으로 이어진다. 최근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를 통해 독거노인을 발견, 집을 청소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대개 거부한다. 대구 수성구청은 '일사천리 홈클리닝' 사업을 운영 중이다. 구청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 집청소를 위해 10회 이상 설득했다"며 "우리 눈에는 쓰레기여도 엄연한 사유재산이어서 집주인 허락 없이는 청소가 어렵다"고 전했다.
■"체계적 지원, 조사 시급"
독거노인 쓰레기집 문제는 특수한 경우로 인식됐다. 연구나 정책도 미미하다. 보건복지부는 쓰레기집 관련 정책이 없고 서울시 역시 자치구·동별로 사업을 벌이지만 따로 파악해두거나 통계를 관리하지는 않는다. 서울 모 동주민센터 관계자는 "주민센터 복지플래너가 문제 해결을 위해 노인을 설득하는 것부터 모든 일을 한다"며 "특정 예산이 없다보니 매번 자원봉사자 모집부터 생필품 후원까지 발로 뛰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고령화를 앞서 겪은 일본은 쓰레기집 '고미야시키'가 공론화됐다. 일본의 지자체는 2005년부터 독거노인 자택을 방문해 쓰레기를 버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체 지자체의 23%가 이런 정책을 시행, 600여가구가 혜택을 받는다. 김성찬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쓰레기집 주인은) 지역주민으로부터도 고립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들에 대한 사회연결망을 복구해주는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김현미 센터장은 "지자체나 복지기관에서 청소 등 정책 바우처를 제공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며 "정책을 위해서는 쓰레기집에 대한 기준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쓰레기집에서 벗어난 독거노인은 활력을 얻기도 한다. 지난달 17일 서울 광진구 군자동주민센터는 김모 할아버지(67) 집을 청소했다. 청소 이후 할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원 면접을 보는 등 다시 자립을 준비한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