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밥집, 그들의 우직한 승부수를 듣다

      2018.05.09 16:56   수정 : 2018.05.09 16:56기사원문


세상에 맛집은 많지만 그 명성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오래 살아남은 집은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 터줏대감, 원조, 본가…. 수많은 수식어를 얻게 된 '전설의 밥집'들은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유물이 된 전설적 노포(老鋪)들이다.

노포란 대를 이어 수십 년간 특유의 맛과 인심으로 고객에게 사랑받아온 가게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자영업자들이 많은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통계를 보면 자영업자 수는 멕시코, 미국, 터키에 이어 한국이 네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국내 자영업자 수는 564만여명, 매년 늘어나고 있다. 손쉽게 시작하는 업종 중에는 요식업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은 채 1년을 버티기도 힘들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의 수는 80만명을 넘어 올해는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현실에서 평균 업력 54년에 달하는 노포 식당들의 성공 비결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생존을 넘어 전설'이 된 이들이기에 말이다. 이 책이 더욱 재미있는 것은 '글 쓰는 셰프'로 유명한 박찬일이 3년간 전국을 돌며 발품을 판 탐사 프로젝트라서다.

저자는 '하루 단 500그릇만 파는' 서울의 하동관, '60년 전설의 면장'이 지키는 인천의 신일반점, '의정부 평양냉면 계열'의 을지면옥, 강릉의 토박이할머니순두부, 부산 바다집 등 한 길만 걸어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서민의 뼈와 살이 되어준 한국의 요식업 1세대 산증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며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은 한국형 밥장사의 성공 모델들이다. 트렌드, 마케팅, 브랜딩 없이도 꾸준히 단골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빛나는 장사 비결, 비용이나 마진과 같은 경영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우직한 승부수는 책장이 술술 넘어갈 정도로 재밌다.

저자는 이들이 오랫동안 성공의 자리를 지킨 장사 내공을 기세, 일품, 지속의 세 가지로 정리해 설명한다. 노포 식당의 주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기세'는 멀리 볼 줄 아는 장사꾼다운 배포와 뚝심이 그 비결이다. 1939년에 창업한 서울 하동관은 지금도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이 줄을 서지만, 하루 단 50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다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더 벌자면 더 팔면 되지만 매일 소 한 마리 분을 받아 손질해 무쇠솥 두 개에 늘 똑같은 방식으로 푹 삶고, 다 팔면 오후 서너 시에도 문을 닫는다. 매일 최선을 다하되 더는 욕심 내지 않는 것, 그것이 하동관의 장수 비결이다.

'일품'은 일에 대한 집념, 맛은 변해도 배불리 먹여 보낸다는 변치 않는 인심이다. 화교 출신으로 타국에서 60년 넘게 산둥식 만두를 빚어온 부산의 신발원이나 인천의 신일반점은 오직 손맛으로 일가를 이룬 집념의 장사꾼들이다. "67년째 손으로 빚는다. 그것은 자존심 같은 것"이라 말하는 이들에게선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값싼 해산물로 배고팠던 청춘들을 위로했던, 부산의 명물 수중(해물)전골을 40년 넘게 해온 바다집 창업주도 오직 노동력으로 '1인분 8000원'이라는 싼 가격을 지켜왔다. 오죽하면 저자가 바다집의 명물로 '차가운 물에 벌겋게 불은 주인의 손'을 꼽았을까.

마지막 '지속'은 세월을 이겨낸 힘이다. 이웃나라 일본과 달리 우리는 대를 이어 수십년간 업을 지속해 온 곳이 드물다. 노포가 새롭게 주목을 받는 것은 세월을 이어가며 지속해온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노포의 지난 세월에는 창업주의 집념과 헌신이 묻어난다. 단골들과 함께 만들어온 기묘한 연대감도 느낄 수 있다. 이는 결코 마케팅 이론이나 테크닉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조차 영원하지 않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3명의 창업주가 인터뷰를 마친 뒤 운명을 달리했고, 대를 이었으나 선대의 맛을 따르지 못한 이들도 여럿이다.
대를 거듭해 우리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우직하지만 담대한 내공이 번뜩이는 장사법의 보고인 노포의 역사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낸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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