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창립일 기념사 2017 vs 2018
2018.06.12 14:17
수정 : 2018.06.12 16:41기사원문
2017년 6월 12일.
1년 전 한국은행이 67번째 생일을 맞은 날(창립기념일) 이주열 총재는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 총재는 당시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 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 통화정책 완화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화정책 완화정도의 조정'은 금리 인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은 총재의 이 발언으로 금융시장은 2017년 초만 해도 적지 않게 지녔던 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버리고 금리인상 사이클 진입을 대기해야 했다.
■ 창립일 vs 창립일
정확히 1년 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창립기념일에 '완화정도의 조정'이란 표현을 쓰면서 금리인상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다. 물론 경기 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에 가능한 일이라는 토를 달았다.
당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년째 사상 최저인 1.25%로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아울러 한은이 창립일에 큰 변화의 시그널을 줄 것으로 기대하던 사람도 별로 없었던 시기다.
하지만 미국 연준은 13~14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25bp 인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리를 사실상 0% 수준 근처에서 유지하다가 2015년 12월 금리를 0.5%, 2016년 12월 0.75%로 올린 뒤 2017년 3월에 1.00%까지 올린 상태였다.
1년 전 한은 창립기념일 직후 연준이 금리를 올리면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1.00~1.25%)는 같은 수준이 됐다.
1년이 지난 지금도 한은 창립일 직후 FOMC가 예정돼 있으며 연준의 금리인상도 준비돼 있다. 이번 주 미국 이벤트가 끝나면 기준금리 역전폭은 50bp 수준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68주년 창립 기념사는 시장에서 도비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창립 기념사로 채권 금리가 더 하락했다. 즉 이자율 시장이 '한은의 금리인상에 대한 조심스런 스탠스'에 좀 더 무게를 둔 것이다.
이주열 총재가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과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한 데 방점을 뒀다.
■ 기념사 vs 기념사
지난해 오늘, 즉 2017년 6월 12일 한은 총재 기념사 중 '역점 추진 사항'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최근 성장세가 확대되고 있지만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고 수요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점에 비추어 당분간은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앞으로 경기회복세가 지속되는 등 경제상황이 보다 뚜렷이 개선될 경우에는 통화정책 완화정도의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검토를 면밀히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통화정책을 운영함에 있어 가계부채 증가세,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추이 등 금융안정 관련 주요사항에 유의해야 함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시는 이 핵심 문단 두 번째 문장의 '완화정도의 조정'이 큰 이슈가 됐으며, 완화정도의 조정 시기(2017년 11월)까지 5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2017년 3분기 성장률은 1.5%를 기록해 분기 기준으로 7년여만에 가장 높았다. 이 같은 예상을 웃도는 성장세를 바탕으로 한국은행은 6년 5개월만에 금리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 즉 2018년 6월 12일 기념사의 '역점 추진 사항'은 다음과 같다.
[국내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이 아직 크지 않으므로 통화정책의 완화기조를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금융불균형이 커질 수 있는 점, 그리고 보다 긴 안목에서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통화정책 운용 여력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 성장과 물가의 흐름, 그리고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와 그에 따른 금융안정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년 전처럼 한은은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즉 큰 그림에선 낮은 수준의 정책금리를 빠르게 변화시킬 뜻이 없음을 언급한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금리 수준이 경기를 부양하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핵심 문단의 두 번째 문장에서 "통화정책 운용 여력 확보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통화정책 운용여력 확보'는 미래를 대비한 금리인상 필요성과 관련된다. 금리 수준이 상당히 낮은 상태에서 경기가 어려워졌을 때 통화정책은 한계를 나타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 얘기하는 '올릴 수 있을 때 미리 올려 놓아야 한다'는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금융불균형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저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 등과 관계되는 문제다.
금융시장에서 이 대목을 눈 여겨 보는 모습도 보였다.
자산운용사의 한 채권매니저는 "이날 한은 총재 기념사 중 '완화정도의 추가 조정은 신중히 하겠다'는 대목 등이 주목을 받아 채권시장이 강세로 갔다"면서 "하지만 한은은 금융불균형과 통화정책 여력확보를 거론하면서 금리 정상화를 더 하고 싶다는 속내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사람들이 '신중한 통화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한은은 '여력 확보' 의지도 비쳤다"면서 "자신 있게 시그널을 주지 못하는 이주열 총재 특유의 균형자 성격이 녹아 있는 언급"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총재는 금리를 좀 더 인상하고 싶긴 한데, 적극적으로 인상하자는 얘기를 못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맥락을 볼 때 내일 지방선거의 여당 압승 이후 한은이 가을 정도에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듯하다"고 예상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