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로 생계 유지하는 청년들...장기 취업난이 만든 '프리터족'

      2018.06.23 10:49   수정 : 2018.06.23 12:58기사원문

# 20대 윤승원(가명) 씨는 공식적으로 ‘무직’ 상태다. 현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평일 오전·오후에는 편의점, 저녁엔 식당에서 일한다.

토요일 PC방 아르바이트까지 합하면 여느 중소기업 사원 못지않은 수입을 번다. 한때 안정적인 직장을 꿈꿨지만, 경기불황이 이어지면서 일단 취업은 손을 놓은 상태다.
윤 씨는 “일이 고되긴 하지만 취업을 못한 상태에서 지출은 꾸준히 발생하다 보니 아르바이트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그래도 수입이 적지 않아 나름대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직장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이 늘고 있다. 경기불황과 취업난이 만든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는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프리(Free)와 노동자를 뜻하는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다.

지난해 7월 알바천국에서 회원 1110명에게 설문한 결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38.7%), ‘당분간 취업할 생각이 없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다’(27.6%)라고 답한 프리터족이 66.3%에 달했다. 이는 5년 새 23% 증가한 수치다.

■ 취업난 + 열악한 중소기업 근무환경에 자의 반 타의 반 '알바생' 선택

프리터족이 느는 이유는 취업난 때문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20~30대 실업자는 각각 36만6000명, 17만2000명가량이다. 약 28만명, 36만6000명이었던 2008년보다 크게 늘었다. 이 기간에 20대 취업자는 23만7000명, 30대 취업자는 44만5000명 정도 줄었다.

지방 사립대생 김희연(가명) 씨는 “취업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부모님께 마냥 의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라며 “전공과 상관없이 대형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 직종에 취업한 선배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아르바이트 선호도가 높아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알바천국 설문조사에서 66.1%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알바를 계획 중이거나 지금 하고 있는 알바를 늘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최근 젊은 층에서 확산된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일과 삶의 균형)을 선호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높은 급여를 받는다면 잦은 야근과 회식을 감수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2030세대는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고 생각해 중소기업을 꺼리는 경향이 짙다.


실제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65.5%가 ‘연봉이 낮더라도 야근 적은 기업’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11.8%만이 ‘연봉이 높고 야근이 잦은 기업’을 선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대졸자들은 왜 중소기업을 기피하는가’라는 연구를 발표한 강순희 경기대 교수는 “그간 중소기업 기피요인으로 지적돼 온 임금이나 소득격차 외에도 복리후생 제도, 사회적 평판, 근무환경 등도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프리터 족을 자처하는 강진수(가명) 씨는 “내가 대기업에 갈 실력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박봉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 취직할 마음은 없다”며 “연애와 결혼만 포기하면 아르바이트만으로 충분히 살 만하다”고 못 박았다.

백화점 주차요원으로 근무하는 조명균(가명) 씨의 경우 모 소기업에서 근무할 때 월급 160만원 남짓을 받았다. 하지만 야근과 잦은 회식, 상사의 폭언 등을 참지 못해 퇴사, 지금의 일을 하고 있다. 조 씨는 “적응하는 데 힘들긴 했지만 지금은 몸이 좀 피곤할 뿐 급여도 전 직장에 준하고 휴식·퇴근 시간이 보장돼 당장 재취업할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 프리터족 증가가 경제활력 발목 잡을 수도.. "기업문화 개선 등 근본 대책 필요"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발표된 LG경제연구소 보고서 ‘우리나라 잃어버린 세대 등장의 의미’에 따르면 국내 대졸 초임 급여는 10년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걸로 집계됐다. 이 기간에 평균임금이 200만원에서 250만원 수준으로 오른 반면 청년층 임금은 전체임금의 71~74% 수준이었다.

이런 이유로 청년들이 중소기업 취직 대신 아르바이트에 눈길을 돌리는 것. 결국,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LG경제연구소 이근태·이지선 연구원은 “청년들의 실업기간이 장기화되면 업무를 통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잃게 되고, 인적자본 축적이 늦어지는 손실이 발생한다”며 “이들을 부양할 50~60대 부모세대가 은퇴할 땐 노후대비와 자녀부양 등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청년들의 소득손실로 세수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여기에 소비까지 둔화되면 부가가치세 감소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실업급여, 기초생활 보장비가 늘 뿐 아니라 국민연금 등의 가입률이 낮아져 정부지출 부담까지 커지게 된다.

이 연구원은 “실업상태인 청년들이 늘어나 채용과정에서 임금협상력이 약화됐다”며 “아르바이트, 인턴 등 비정규직 일자리가 확산된 점도 배경으로 작용된다”고 말했다. 또 “전체 비정규직 비중이 꾸준히 하락하는 가운데 20대에서만 비정규직이 상승, 일자리 질이 악화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정부에서도 청년 취업률을 올리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3·15 일자리 대책이다. 중소·중견기업에 취직한 청년에게 연봉의 3분의 1 수준의 금액을 지원하고 34세 이하 청년이 중소기업에 입사했을 때 5년간 소득세 전액을 면제해주는 등의 청년을 직접 지원한다는 게 정책의 골자다.
이를 통해 2021년까지 청년실업률을 8%까지 낮춘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를 두고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순 없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아무리 채용을 늘리라며 중소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취업자 지원금을 확대해도 청년들은 본인들의 근무환경이 좋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금액적인 지원도 분명 필요하지만 애사심을 빙자한 야근 강요, 퇴근 후 업무 지시, 회식 강요 등 경직된 기업문화를 바꾸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smw@fnnews.com 신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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