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七' 콘서트 여는 장사익 "일흔 되고 보니… 지나온 노래 인생 돌아보게 돼"
2018.10.29 17:43
수정 : 2018.10.29 17:43기사원문
'내가 어느덧 늙은이의 나이가 되어 사랑스러운 것이 그냥 사랑스럽게 보이고 우스운 것이 거침없이 우습게 보이네'(장사익의 신보 9집 앨범 '자화상' 수록곡 '상처')
"야구 경기도 9회전까지 있고, 축구도 90분 동안 게임을 하잖아요? 요새 인생도 90세 즈음까지 보면 칠순이라는 나이는 어쩌면 대역전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후반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경기를 어떻게 해왔고,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볼 때가 된 것이지요."
소리꾼 장사익, 어느덧 인생의 7학년을 맞이한 그가 그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기념하며 앞으로의 삶의 희망에 대해 노래하는 무대를 준비했다. 오는 11월 24일과 25일 이틀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되는 '장사익 소리판-자화상 칠(七)' 공연이 바로 그것. 공연을 한 달여 앞둔 지난 26일 오전 서울 홍지동에 위치한 장사익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늦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이었다.
"자연이란게 가차우니 참 좋네요. 특히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산 안개도 피어나고 참 좋죠."
그의 집은 창 너머로 인왕산이 보이는 북한산 끝자락에 있다. 그의 CD를 매달아놓은 그의 집 앞마당에 걸린 풍경이 비바람에 흔들리며 소리를 냈다. "풍경에 있던 물고기들도 오랫동안 바람을 맞으니 삭아서 풀숲으로 도망을 갔길래 소리나 잘 퍼지라고 꺾어진 CD들을 그 자리에 매달아놨다"고 허허 웃었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은 시작하셨냐는 물음에 "레퍼토리는 다 정했고 오는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권투선수 챔피언 결정전 앞두고 캠프 차리듯 콘서트 준비에 돌입한다"고 한 그는 "소리는 애인과 같아서 멀리하면 도망가니 매일 새벽 일어나 운동을 하고 한 시간 반씩 소리를 푸는 것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194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굽이굽이 인생을 살면서 다양한 맛을 보았고 끝내 노래하는 삶에 천착한지도 25년이다. 그는 가수 데뷔 전까지 보험판매원을 비롯해 딸기 장수 등 15개의 직업을 가질 만큼 어렵게 살았다. 생계를 위해 태평소를 배우고 이광수 사물놀이패에서 연주하다 마흔 다섯살 때 피아니스트 임동창을 만나 함께 공연을 하면서 소리꾼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그의 한서린 목소리에 위로를 받는 이들이 서서히 늘어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을 거치며 맺힌 그만의 한서린 목소리가 초로의 삶을 위로하는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로 명명받게 됐다.
그의 대표곡 '찔레꽃'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에 대해 그는 "눈물의 인생을 노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하면서 인생을 배우지만 저는 인생을 배우고 노래를 했어요. 사람들이 노래라고 하면 밝고 화려한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세상엔 힘든 사람이 더 많죠. 그이들을 위로하고 마음을 씻어 같이 갈 수 있게 해주는 노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잠깐 앞에서 춤추고 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죠. 하지만 다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건 슬픔을 공감해주는 노래에요. 먼지를 씻어주는 비처럼요."
그의 콘서트는 항상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략 2년마다 한 번씩 정기적으로 타이틀을 바꿔오며 공연을 해왔다. "제 나름의 숙제에요. 숙제처럼 인생에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마치 묵상을 하듯 일상에서 발견하는 작은 깨달음 가운데 정수를 뽑아 콘서트 타이틀로 내세우는데 가장 큰 영감을 받는 곳은 뭐니뭐니해도 시인들의 시다. 매일 시집을 끼고 사는 그여서 그의 앨범 속 노랫말은 대부분 시인들의 시를 그대로 가져왔다. "여기에 장사익은 음율을 더했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솔직히 시인들의 시를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감동하잖아요. 거기에 저는 고, 저, 장, 단 감정을 넣어서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할 뿐이에요. 저는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기에 가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무얼 쓸 능력은 못돼요. 시인들을 따라갈 수도 없어요. 오랫동안 가슴에 맺힐 좋은 시를 음으로 새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새로운 시를 보고 화두에 대해 고민하는 일도 그의 나이 들어감을 반영하게 됐다. 그래서 이번 콘서트의 타이틀은 '자화상 七'이다. 예전부터 읽어온 윤동주의 시가 일흔이 되어서야 새롭게 다가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찔레꽃은 사회생활에 치였던 40대 중반을 나타냈었다면 이번에는 일흔이 되어 느끼는 내 감정이 자화상이라는 시에 투영된 것이에요. 산모퉁이 돌아 우물가에서 만난 사내는 바로 물에 비친 나인데 지나온 삶이 떳떳한가 마주하니 스스로 갈지자 인생을 부잡스럽게 걸어온 게 미워보이는거죠.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어요. 부족하고 미워도 가야하는데 가다보니 가엽고 돌아보니 또 그 놈이 보여서 가고, 평생 그리워지고 그런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돌아보니 다시 나를 제대로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자화상' 외에도 새롭게 발매할 9집 앨범에 수록되는 신곡들이 대거 포함된다. 허영자 시인의 '감', 마종기 시인의 '상처' 등의 시에 음을 붙였다. 시뿐만 아니라 젊은 문학도가 쓴 '바보온달'도 노래한다. 북 하나에 의지해 음을 띄우기도 하고 재즈 비트에 싣기도 하고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을 펼쳐낼 예정이다. "사람들이 제 음악이 동양음악이냐, 서양음악이냐 하는데 나는 장르를 구분지을 생각이 없어요. 단지 제 호흡대로 부르는데 판소리처럼 느낄 수도 있고 다르게 느낄 수도 있는거죠."
이번 공연에서 그는 지금의 자신을 최대한 보여주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공연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3년 전인 2015년 성대에 혹이 생겨 노래 인생에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또 새롭게 오래갈 목소리를 얻었다고 했다. "옛날에 비해 힘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음악의 세계가 열리는 거에요. 나도 늙어가고 관객들도 같이 나이 들어가는데 그 가운데서 있는 그대로 노래하는게 제 삶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래하고 싶은데 80이 되면 '자화상 팔(八)', 90이 되면 '자화상 구(九)'도 할 수 있으면 좋겠죠.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 더 죽음에 대해 가까이 느끼고 그걸 성찰하는 노래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