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가 위기에 빠졌다"
2018.11.27 17:21
수정 : 2018.11.27 17:21기사원문
지난 2007년 금융당국은 유럽식 회계기준이라며 IFRS 도입 로드맵을 발표했다. 국제 회계평가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려는 뜻도 있었다. 일정에 따라 2009년부터 상장사들은 K-IFRS, 곧 한국판 IFRS를 자율로 도입했다. 이어 2011년부터는 상장사 도입이 의무가 됐다. 예전 회계가 규정 중심이라면 IFRS는 원칙 중심이다. 큰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 기업과 회계사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주는 방식이다. 예컨대 자산을 평가할 때 과거엔 장부가를 적었다. 하지만 IFRS 아래선 시가를 적는다. 시가를 얼마로 평가할지는 시장의 몫이다. 이처럼 재량권을 주는 대신 원칙을 어기면 큰 벌을 받는다.
현재 한국판 IFRS는 갓 쓰고 넥타이 맨 꼴이다. 겉모양은 그럴듯하지만 속은 봉건시대다. 포럼에서 한 참석자는 "IFRS 도입 이전에 회계를 공부한 금융감독 당국자들이 과연 IFRS를 제대로 이해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회계의 정치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정치가 얼마든지 불량회계를 트집 잡아 특정 기업을 애먹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제2, 제3의 삼바가 나올 수도 있다. 옳고 그름을 법원이 판단하는 회계의 사법화 우려도 크다. 삼바 사태는 이미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IFRS를 규제와 비교하면 사후규제, 네거티브 규제다. 반면 예전 회계는 사전규제, 포지티브 규제다. 미주알고주알 규정집에 적힌 대로만 했다. 지금 와서 예전 회계로 돌아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혁신기업들은 눈에 안 보이는 무형자산이 80%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장부가만 봐선 알 수 없다.
최선은 감독당국이 애초 IFRS를 도입한 취지대로 시장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차선책은 과도기적 혼란을 줄일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장은 "이 정도까진 용인한다는 룰을 만들어서 기업과 회계사, 감독당국이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황인태 교수(중앙대)는 독립적인 '회계기준연구회'(가칭) 구성 아이디어를 내놨다. 감독당국이 이들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