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나무숲?'...황당 청원에 몸살 앓는 국민청원
2019.03.05 11:12
수정 : 2019.03.05 11:12기사원문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청와대 대나무숲(개인의 소소한 비밀 이야기 공유 게시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당초 취지에는 맞지 않는 황당한 청원부터 차마 입에 올리기에도 거북한 용어까지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들의 불만을 배설하는 곳에 불과하다는 강한 비판도 나왔다.
■쏟아지는 황당 청원 및 용어까지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게시판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남자들의 성기를 없애주세요'라는 글이였다. '여성들은 없는데 남성들은 있으니 남녀평등에 위배된다' '남성들이 틈만 나면 성폭행을 하니 없애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게시판 관리자는 서둘러 '성기'라는 표현을 '**'으로 수정했지만 이 황당한 국민청원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펴져나갔고 갑론을박의 대상이 됐다. 이날 기준 해당 청원에는 1700명에 가까운 이들이 이 게시글에 동의했다.
이 밖에도 특정 게임의 캐릭터를 없애 달라, 특정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을 해체시켜 달라는 등의 청원들도 올라와 게시판 방문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황당한 청원을 작성한 사람들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청원도 등장했다.
일각에서는 청원 게시판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정당한 청원을 통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의 'https' 차단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 청원은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방송통신위원회가 답변을 내놨지만 많은 이들이 '수박 겉핥기식 답변'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국민청원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국민들의 의문과 분노를 일차적으로 배설시켜 일이 더 커지지 않게 땜질하는 느낌"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작은 목소리에 귀 열어야"
전문가들은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의 순기능은 분명하지만, 무분별하게 올라오는 황당 청원이 문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그동안 우리 사회의 소통 경로가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소통의 장으로 기능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과정에서 사적이거나 황당한 내용까지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데 이는 공론화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필수불가결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상황에서는 결국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라며 "국민청원 게시판은 소통의 장일 뿐, 문제 해결을 위한 만병통치약처럼 삼는다면 굉장히 위험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그간 정치권과 사법부 등이 국민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게시판이 등장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권력 중심 사회라는 국민들의 선입견을 해소하면 국민청원 게시판이 있을 이유가 없고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