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묵 센터장, '공병장교를 꿈꾼 최고의 북한문제 전문가'

      2019.03.28 16:08   수정 : 2019.03.28 16:55기사원문
"어러운 가정환경 탓에 군 장교의 길을 택했고, 고등학교 경력을 살리기 위해 공병장교를 되려고 했지만 군의 상황이 바뀌면서 교수인력에 지원했고, 결국 북한 전문가가 됐습니다"

28일 서울 용산구 소재 한국국가전략연구원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문성묵 통일전략센터장은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문 센터장은 군에 재직할 당시에는 현역 군인 중 북한을 가장 잘 아는 '북한통'으로, 지금은 TV와 언론에서 북한과 안보에 관련된 분석과 조언을 구하는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북한 인사들과 가장 많은 접촉을 한 군인 출신 전문가로서 북한의 속내를 잘 알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현재 안보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가야할 길을 합리적인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두루 받고 있다.



1974년 육군 3사관학교 13기로 입교한 문 센터장의 원래 꿈은 공병장교가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가정 경제상황으로 진학한 공업고등학교에서 배운 건축 특기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해당 기수에는 공병 특기가 없었고 3사 최초로 교수요원 선발에 응시하며 진로가 180도 바뀌게 됐다.

이후 문 센터장은 경북대 사학과와 육군대학에서 공부했고 국방대학원 석사과정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국제관계를 전공했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는 육군본부 군사연구실 연구관으로 중국에 대한 연구를 하며 '중공의 진로와 한국의 안보'라는 책자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이후 육군이 선발하는 '정책활용요원(박사과정)'에 지원해 경북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여기서도 중국을 전문으로 했지만 1992년 남북관계의 긴장이 급속하게 풀어지면서 국방부가 만든 대북부서에 배속됐다. 문 센터장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북한 전문가의 길을 걸어갔다.

문 센터장은 소령이던 지난 1992년 3월부터 2009년 12월 준장으로 전역할 때까지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방부 정책실에서 북한과 관련된 업무를 맡았다. 2002년 10월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는 우리측 수석실무대표를 맡아 북한과의 군사협력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다.

그는 "대령이 되고 난 뒤 정책실 격무가 심해 타부서 이동을 원했지만 6·15남북공동선언이 이뤄지고 북한 관련 업무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정책실을 떠나지 못했다. 결국 이례적으로 정책실에 오래 근무하면서 북한 관련 현안을 오래 담당했고, 북한과의 실무 협상에 자주 참여하면서 북한 전문가가 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인생의 역정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급변하는 상황 속에 북한을 담당하며 전문지식을 쌓았고 군에서도, 전역을 한 이후에도 전문성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특히 작지만 한국의 안보에 이바지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산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은퇴한 지금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방송을 준비한다. 국방FM '국방광장'에서 오전 7시부터 2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는 "청취자들에게 현재 안보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전할 수 있는 채널을 맡고 있다는 것이 참 보람차다"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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