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 충전하러 주말이면 경기북부에 간다”
2019.04.25 11:04
수정 : 2019.04.25 11:04기사원문
경기도는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갈 수 있고 자연과 역사와 설화가 공존하는 경기북부 여행명소 5곳을 추천했다. 포천 명성산, 양주 회암사지, 동두천 소요산, 구리 아차산, 파주 임진강 화석정 등지가 바로 그것이다.
김효은 경기도 평화대변인은 25일 “한반도 중심 경기북부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명소가 많다”며 “경기북부에서 봄도 완상하고 역사도 음미하며 인생의 추억거리를 쌓아 보라”고 말했다.
△ 궁예의 한이 서린 ‘포천 명성산’
포천 명성산은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왕 궁예가 왕건에게 패배해 도망가다 죽은 곳으로 전해진다. 최후를 맞이한 궁예가 망국의 슬픔에 통곡하자 산까지 따라 울었다고 해 ‘울음산’으로도 불린다. 한 시대의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역사적 명소인 것이다.
과거 인기리 방영된 드라마 ‘태조 왕건’의 팬이라면, 더욱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전국 5대 억새군락지 중 하나로, 정상 부근에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룬다.
5월 초에는 곳곳에 철쭉이 완연한 봄을 드러내고, 기암괴석마다 숨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산행객을 환영한다. 인근에는 국민관광지인 산정호수가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에게 좋은 소풍 장소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의정부역에서 좌석버스 138-6번을 타거나, 영북면사무소에서 시내버스 10번/10-1번을 타면 명성산 입구에 데려다준다.
△ 태조 이성계 별궁 ‘양주 회암사지’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인도 마갈국(마가다국)에서 태어나 원나라에서 고승으로 이름을 날리던 지공선사가 고려에 찾아와 “산수가 천축국 나란타사와 같아 불법을 펼치면 흥할 것”이라며 이곳에 회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특히 회암사는 조선 최대의 왕실사찰로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왕자의 난’ 이후 상왕으로 물러난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 머물며 희생당한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일종의 별궁 역할을 한 것인데, 실제 이곳은 용문기와나 계단구조, 월대 등이 경복궁과 유사해 태조의 또 다른 왕궁이라 불리기도 했다. 태종의 아들이자 세종대왕 형인 효령대군은 회암사 중창을 추진하며 이곳에서 대규모 불사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명종 시절 문정왕후는 회암사를 중수하고 400점의 불화를 제작하는 등 이곳을 조선불교 진흥의 중심으로 삼았다.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전후로 일어난 화재로 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1998년부터 2012년까지 발굴작업으로, 다른 사찰과 달리 궁궐과 유사한 건축양식임이 확인됐고 각종 왕실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현재 이곳에는 회암사 역사와 가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회암사지박물관’이 들어서 있으며, 인근에는 순조의 명으로 지어진 새로운 회암사도 소재해 있다. 회암사가 위치한 해발 423m의 천보산은 양주의 진산이기도 하다. 곳곳에 핀 봄꽃을 즐기며 산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양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철 덕정역에서 시내버스 78번을 타면 회암사지박물관 앞에 내려준다.
△ 원효대사-요석공주 로맨스 ‘동두천 소요산’
동두천 소요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원효가 요석공주를 떠나 소요산에 들어와 수행하던 중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찾아와 유혹을 했다.
설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대사는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수행을 더 정진하는 의미에서 이곳에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소요산 곳곳에는 원효대, 원효폭포, 원효교, 요석공주별궁지 등 원효대사와 관련된 명소가 많다. 특히 요석공주별궁지는 요석공주가 원효대사의 수행지 근처에 지은 별궁으로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원효가 있는 곳을 향해 절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근에는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자유수호박물관 등 어린이와 동행한 가족이 방문하기 좋을 시설도 소재해 있다.
수도권 전철 1호선 소요산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소요산 입구 매표소에 도착한다.
△ 온달장군 최후의 격전지 ‘구리 아차산’
아차산은 한강유역을 놓고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다툼이 활발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아차산은 고구려 후기 평강공주의 남편,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달은 “죽령 서쪽을 되찾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신라군과 맹렬히 싸웠으나, 격전 끝에 아차산성에서 적의 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인이 온달을 장사 지내려 하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자,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애원하자 그제야 움직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를 증명하듯 아차산 일원에는 아차산성, 고구려 보루군(堡壘群) 등 각종 유적·유물이 쏟아져 나왔고,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 크기의 ‘공기돌바위’와 온달이 태어났다는 온달샘 등도 유명하다. 매년 10월에는 온달장군 추모제향 행사도 열린다.
아차산을 오르다 보면 서울 시내와 한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인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영화사’나 고구려 시대 마을을 재현한 고구려대장간마을 등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수도권 전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도보로 15~20분 정도 걸으면 아차산생태공원을 통해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 율곡 이이의 충성심 ‘파주 임진강 화석정’
임진강 화석정은 율곡 이이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시를 짓고 명상을 하며 문인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화석정이 임진왜란 당시 불탔다는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설화가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율곡은 평소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으로 화석정 마루와 기둥을 닦도록 했고, 어려움이 있을 때 읽어보라며 봉투 하나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율곡이 죽고 8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급히 피난길을 떠났는데 임진강에 도달해선 칠흑 같은 어둠으로 도강이 어려웠다. 때마침 율곡의 유언이 생각난 이항복이 봉투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따라 화석정에 불을 붙이니 대낮처럼 밝아져 선조는 무사히 피난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현재 화석정은 임진강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도 유명하다. 특히 민통선 내 비경을 간직한 임진강변 생태탐방로는 물론 임진각 평화누리, 반구정, 자운서원, 통일촌 장단콩마을 등 함께 둘러볼 만한 명소가 인근에 많다.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문산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55번을 타면 화석정 앞까지 간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