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쓰지만 강렬한 아마로네

      2019.06.13 18:56   수정 : 2019.06.13 18:56기사원문


"어이쿠, 큰일났네. 단맛이 하나도 없네. 너무 발효시켜버렸네. 알코올도수도 너무 높잖아. 아! 이걸 어떻게 내다 팔지?"

1900년 초 이탈리아 베네토주 베로나지역 발폴리첼라(Valpolicella)의 한 와이너리. 눈꼬리가 잔뜩 치켜올라간 양조 책임자 앞에서 한 젊은 직원이 안절부절 못했다. 와인 발효조의 온도를 담당하고 있는 이 직원은 최근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그만 발효를 멈춰야 하는 시간을 놓쳐버린 것이다. 덕분에 와인은 포도당분이 모두 발효돼 이미 쓴 와인이 돼버렸다.

이 지역은 와인을 달달하게 만들어 먹는 곳인데 단맛이 없는 와인은 판로가 막혔다는 것을 의미했다.

100여년 전 이탈리아 3대 와인 중 하나로 꼽히는 '아마로네(Amarone)' 와인은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아마로네의 본고장인 발폴리첼라는 로마시대 때부터 최고급 와인 산지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이 지역은 로마시대 때부터 달달한 맛의 와인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1500년 전부터 이 지역 와이너리들은 9월말에 포도를 수확한 뒤 바로 압착해 와인을 만들지 않고 포도를 3~5개월 정도 말려서 와인을 만듭니다. 주로 바람이 잘 통하는 건물 2층 공간에서 가장 좋은 포도송이만 골라 대나무로 엮은 발이나 볏집 등의 위에서 널어놓고 말리는데 이를 '아파시멘토(appassimento)' 기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몇달을 곰팡이가 피지 않게 잘 건조시켜 포도 알갱이가 반 정도로 줄어들게 되면 압착해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당도가 높을수록 고급 와인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포도 속 수분을 줄여서 당도를 높인 후 와인을 만든 것이죠.

이 지역에서 가장 고급 와인인 레초토(Recioto) 와인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와인은 포도 속에 있는 당분이 효모와 만나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바뀌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데 레초토 와인을 만들려면 일정 수준의 알코올도수를 확보한 후 발효를 멈춰야 와인에 달달한 맛이 남아 있게 되는데 이 시기를 놓쳐버린 것이죠. 그래서 아마로네 와인의 이름도 '달지 않고 쓰다'는 뜻의 '아마레(Amare)'에서 유래됐습니다.

그런데 혀를 녹일듯한 단맛을 가진 와인을 기대했다가 실망한 양조책임자의 생각과 달리 쌉쌀한 맛의 아마로네 와인은 새로운 세계를 열게 됩니다. 독특한 풍미와 깊은 맛을 가진 풀바디 와인을 맛본 전문가들의 찬사가 이어지면서 아마로네 와인은 금세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우연의 실수가 명품을 만든 것이죠. 이후 아마로네 와인은 바롤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 됩니다.

아마로네 와인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렬하고 묵직한 맛을 내는 와인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아마로네 와인을 잔에 따라보면 잉크빛보다 더 어두운 색깔을 띱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새까만 연탄색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색깔이 짙은 이유는 침용과정에서 오랜시간 동안 포도껍질에 있는 색깔을 모두 빼내기 때문입니다.

아마로네 와인을 잔에 따른 후 코를 들이대면 알코올 냄새가 강하게 느껴집니다. 포도를 말리는 과정에서 응축된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치환돼 알코올도수가 높아진 것이죠. 아마로네 와인은 알코올도수가 대부분 15% 이상입니다. 일부 와이너리는 알코올도수를 17%까지 올려 내놓기도 합니다.

입속에 넣어보면 찐득하게 졸인 과일향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어 묵직하게 혀를 누르는 질감도 압도적이며 적절한 신맛도 갖추고 있습니다. 삼키고 난 후에는 매끄럽고 잘게 부서져 들어오는 타닌이 아주 고급스럽습니다. 한마디로 균형이 잘 잡힌 정말 묵직한 와인입니다. 그러나 뒷맛에는 단맛이 살짝 느껴집니다. 아마로네 와인은 포도를 말려서 사용하기 때문에 워낙 당도가 높아 원하는 알코올도수에 도달하고도 당분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와이너리의 취향에 따라 당도를 아예 없앤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와인은 약간의 단 맛을 그대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아마로네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는 코르비나(Corvina), 코르비노네(Corvinone), 론디넬라(Rondinella), 몰리나라(Molinara) 입니다. 모두 이탈리아에서 나는 토착 품종으로 비율은 와이너리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코르비나가 주요 품종으로 쓰입니다. 코르비나는 향기로운 과일향으로 아로마를 담당하며, 코르비노네와 론디넬라는 아마로네 와인의 색깔을 더욱 짙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또 몰리나라는 산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일부 고가의 아마로네 와인은 매우 희귀한 포도 품종인 오세라타(Oseleta)도 사용합니다. 포도알과 송이가 작아 작은 참새를 뜻하는 포도로 향이 아주 좋습니다.

베로나 북쪽의 발폴리첼라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은 발폴리첼라, 레초토, 아마로네 세 가지 입니다. 발폴리첼라는 포도를 따서 바로 압착해 만드는 와인으로 가볍고 신선한 맛이 좋습니다. 또 포도를 말려서 와인을 만들면 레초토와 아마로네 와인이 됩니다. 발효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면 달달한 레초토 와인이되고 발효를 모두 시키면 쌉싸래한 맛이 일품인 아마로네 와인이 되는 것이죠. 아마로네 와인은 2년 이상 오크 숙성을 거쳐 시장에 나오는데 일부 와이너리들은 10년 동안 숙성을 시킨 후 내놓기도 합니다. 워낙 묵직한 와인이라 시장에 나온 후에도 최소 3~4년 정도는 기다렸다가 먹는 것이 좋습니다.
향이 강한 육류나 강한 맛의 치즈 등과 특히 잘 어울립니다.

아마로네 와인이 만들어지는 베네토 지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다크초콜릿을 연상시키는 아마로네 와인이 연인들의 사랑을 닮아서인지 서양에서는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에서는 아마로네 와인을 테이블에 올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오늘 밤 아마로네 한잔 어떠신지요.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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