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정 듬뿍 담은 '진땡이 국밥' 한그릇에 옛 추억이 솔솔

      2019.06.18 16:48   수정 : 2019.06.18 16:48기사원문


"할배, 외상으로 줄테니 가져가 잡숴보이소. 나중에 다시 꼭 오이소."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왜관시장에서 족히 80살은 넘어보이는 할아버지와 환갑쯤 돼 보이는 어물가게 주인 사이에서 큰소리가 난다. 할아버지는 고등어 한 손을 사가고 싶은데 생물 고등어와 냉동 고등어를 놓고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물가게 주인은 생물은 비싸기만 하니 냉동으로 가져가서 드셔도 좋다고 연신 권하지만 할아버지가 시원스럽게 답을 내리지 않자 그냥 가져다 드시라는 것이었다.



지난 17일 찾은 칠곡의 왜관시장은 활기가 넘치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의 발길과 정이 듬뿍 오가는 생활의 중심지였다. 군 전체 인구가 12만이 채 안되고 왜관읍 인구도 4만이 안되는 것을 생각하면 왜관시장은 규모가 너무 크다. 시장은 장방형으로 가로세로 골목이 있고 시장내 상설점포는 150여개에 달할 정도다.



"옛날에는 사람이 많아 장사가 아주 잘됐지.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없어. 젊은 사람이 너무 없어. 그냥 (닫을수 없어 가게문을) 여는 거지." 상점에서 만난 나이가 오래된 상인은 과거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사는게 재밌다고 했다.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데 거기서 보는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자식 얘기도 하면서 산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젊은 사람이 없기는 하다. 점심시간에 직장인으로 보이는 몇몇의 무리와 인근 주민들이 시장내 유명한 식당을 찾는 게 그나마 볼수있는 젊은 사람 전부다.

왜관시장은 낙동강 변에 위치해 조선시대부터 오가는 사람이 많은 큰 장이었다. 또 한국전쟁때는 낙동강 전투를 앞두고 우리나라 최후의 방어선이 구축됐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왜관시장에는 유독 상점 간판 맨 앞에 '서울'이라는 말이 많이 들어간다. 서울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이 6.25 전란때 국군을 따라 피난오면서 이 곳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유명한 맛집들도 대부분 서울에서 장사를 하다가 내려온 사람들이다.



전통시장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는 오래된 맛집을 둘러보는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단골집에 들러 식사를 하거나, 오래된 지인을 단골집으로 불러내 만남을 시작하기도 한다. 왜관시장에서 소문난 맛집은 마포식육식당, 서울손칼국수, 한가면옥, 토종맛집, 진땡이 국밥 등이 유명하다.



특히 진땡이 국밥은 장이 서지 않는 평일에도 점심시간은 물론 온 종일 사람이 들고나는 곳이다. 진한 사골국물에 수육을 듬뿍 넣어 내는 국밥은 겉보기에는 여느 국밥집과 다를게 없지만 국물을 한 입 넣어보는 순간 내공을 느낄 수 있다. 진하게 우려냈지만 탁하지 않고 담백한 고소한 맛이 아주 좋다. 이 가게 앞에서 계속 토렴을 해가며 쉴새없이 국밥을 계속 말아내는 하효진씨는 "국물을 24시간 이상 끓여서 쓰기 때문에 진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다"며 "머리 부위만 삶아내면 국물이 누런 빛을 띠고 사골로만 삶으면 너무 희기 때문에 두가지를 알맞게 섞어 쓴다"고 설명했다.



하 사장은 이 가게의 작은 사장이다. 진땡이 국밥은 하 사장의 아버지가 1979년쯤 간판도 없이 국밥집을 시작해 2대째 이어오고 있다. 가족이 모두 여기서 일한다. 하 사장의 옆에서 주문이 들어오자 내장과 머릿고기, 순대를 썰어내고 있는 사람과 카운터를 관리하는 사람도 모두 누이들이다.

이 집의 국밥이 진짜 다른 것은 국밥에 들어있는 내장과 머릿고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식감과 고소한 맛은 다른 곳에서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다. 하 사장은 "김천에서 고기를 들여다 쓰는데 기름을 모두 제거하고 삶아낸 후 다시 기름을 걷어내는 작업을 거친다"며 "냉장이나 냉동을 거친게 아니라 그날 그날 삶아내 식탁에 내고 있다"고 비결 아닌 비결을 설명했다.

시장의 안쪽에 위치한 한가면옥도 연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함흥식 냉면을 말아내는 곳으로 맛도 좋지만 양도 푸짐하다.

그러나 왜관시장은 안쪽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문을 열지 않은 곳도 많다.
참기름 골목 인근 시장 상인은 "나이가 들어 아픈 사람도 있고 장사도 잘 안되니 문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젊은 사람이 많아져야 시장이 살아날텐데 그게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부동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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