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韓은 중요한 이웃국가"...외교청서에서 삭제했던 표현, 왜 다시?
2019.10.04 17:15
수정 : 2019.10.04 18:01기사원문
【도쿄=조은효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임시국회 개원 첫 날인 4일 소신표명 연설에서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 국가"라면서 "국제법에 따라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싶다"고 밝혔다.
두 가지 메시지가 중첩돼 나온 것이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선 과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한편, 지난 2018년 5월 일본 외교청서에서 삭제(2018년 5월)한 '한국은 가장 중요한 이웃'이란 표현을 공개 연설에서 다시 사용함으로써 관계 악화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에선 당초 한국에 '경고를 주자'는 의도로 구사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일본 여행 안가기 등으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자 적지않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월 방일 한국인은 전년 대비 반토막 수준(48%)으로 급감했다. 이같은 수치는 9~10월로 갈수록 더욱 악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일본 자민당 2인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한·일 관계에 대해 "우선 일본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며 유연한 대응을 언급한 것은 '일본이 심했다'는 일본 내 온건파들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이루고 있는 공명당 소속의 아카바 가즈요시 국토교통장관이 지난 달 28일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축제 한마당 행사에서 "정부 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민간 교류가 활발하다면 양국의 우호관계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양국 간 여러 문제가 생겨 8월 방일 한국인 여행객 수가 전년 대비 48% 감소하는 등 인적 교류가 축소되는 것은 한일 교류에 관여해 온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것도 갈등 관리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 정치권 및 정부 안팎에서도 관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외교가에선 이달 22일~23일 치러질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날 도쿄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일 한국대사관 국정감사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참석한 의원 상당수가 나루히토 일왕 즉위식에 우리 정부가 관계 개선을 이끌만한 특사급 인사를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부겸(민주당) 의원은 "이번 일왕 즉위 의식을 잘 활용하면 한일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 방일을 염두에 두고 파격적인 수준의 인사가 일본을 방문하는 방안에 대해 질의했다. 남관표 주일 대사는 "아직 (어떤 인사가 올 지)확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도 문 대통령이 직접 방일할 경우 관계 개선의 전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이낙연 국무총리의 참석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과거 1990년 아키히토 일왕 즉위식 때 강영훈 국무총리가 참석했던 점, 이 총리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지일파라는 점에서 그렇다.
아베 총리가 이날 연설에서 '중요한 이웃 국가'라는 표현을 오래간만에 되살렸다고 해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있어 일본의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아직까진 강경기조다. 지난 9월 취임한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최근 한국에 대한 강경대응을 되레 선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날 게재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에 국제법 위반 상태의 시정을 강력히 요구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일본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옵션)을 염두에 두고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에 대한 일본의 기존 입장을 견지해 나가되, 한·일 갈등이 민간으로 더 확산되지 않도록 관리해나가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현 스탠스로 분석된다.
한편, 소신표명 연설은 일본 총리가 임시국회와 특별국회가 시작될 때 본회의에서 당면 정치 과제에 대한 기본입장을 설명하는 연설로, 매년 1월 소집되는 정기국회 때의 내정·외교 전반의 '시정방침 연설'과 구분된다. 아베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은 2012년 12월 제2차 집권 이후 이번이 7번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