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강추 요절복통 코미디...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2019.12.17 16:29
수정 : 2019.12.17 16:2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대학로 소극장 연극의 매력을 잠시 잊고 있었다.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요절복통 코미디와 같은 작품으로, 기발하고, 재치 넘치며, 관람 자체만으로 다섯 배우들의 에너지를 팍팍 받을 수 있다. 원작을 기발하게 각색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 공연 장르만의 매력이 있다.
세계 1000만부 이상 판매된 동명 원작은 100세 노인 알란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린 휴먼코미디다. 100번째 생일 파티를 앞두고 양로원을 탈출한 알란은 우연히 갱단에게 쫓기게 되고 그 여정길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현대사의 주요 사건에 휘말린 자신의 드라마틱한 인생사를 들려준다.
알란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스페인 내전부터 미국 핵폭탄개발, 중국 국공 내전, 미국과 러시아의 냉전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과 그 속의 역사적 인물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스탈린, 마오쩌뚱의 아내 장칭, 김정일과 김일성, 프랑코 장군,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과 미국 존슨 대통령 등 스페인, 미국, 중국, 이란,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 9개국을 종횡무진 오간다.
연극은 100세 노인 ‘알란’을 오용과 배해선 두 남녀 배우가 맡아하는 젠드프리 캐스팅으로 고정관념을 허문다. 알란을 포함한 다섯 배우는 극중 알란부터 알란이 지난 100년간 만난 다양한 인물과 코끼리·고양이 등 동물까지 1인 다역을 소화한다. 일명 ‘캐릭터 저글링쇼’는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 아찔아찔 신난다. 특히 이들은 의상도 갈아입지 않고, 그저 이름표를 뗐다 붙였다하면서 자신의 현재 역할을 알리며, 이 과정에서 배우의 성별은 전혀 중요치 않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지이선 작가의 말대로 ‘공연이 믿음을 전제로 한 약속의 집단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연극은 다섯 배우가 수십 명의 인물을 연기하고, 소품 154개로 세계여행을 함으로써, 관객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무대와 객석의 상상력이 한데로 모여 소극장의 시공간을 채운다.
세계사를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지만, 대략적 분위기는 알고 봐야 재미있다. 1막과 같은 리듬과 문법으로 돌아가는 2막 초반이 조금 지루한 감이 있지만 2막 후반부 알란과 고양이의 이야기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야기가 복잡하고 많은 사건들이 휙휙 지나가지만, 100세 노인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는 단순하다. 그의 예측불허 모험담의 끝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삶을 긍정하는 힘과 용기다. 김태형 연출의 말처럼 '그래, 다시 성냥을 그어보자, 삶의 불꽃을 피워보자.' 내년 2월 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