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0대 스타트업, 한국서 나왔다면 절반이 '불법 딱지'

      2019.12.31 16:01   수정 : 2020.01.01 00:47기사원문
"이제 창업자는 사업모델 검토를 대형 로펌에 맡겨 합법하다는 의견을 받아도 없던 규제까지 신설해가며 실패하게 만드는 경우의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정부가 스타트업의 훼방꾼이 됐다."(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지난해 국내에 유니콘기업(기업가치가 1조원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이 3개 탄생하면서 국내 유니콘기업은 총 11개가 됐다.

그중 국내 대표 토종 스타트업 '우아한형제들'은 경쟁사 '요기요'의 독일 본사가 무려 4조7500억원에 인수하는 빅딜의 주인공으로서 세계적 조명을 받았다. 우아한형제들이 지난 2011년부터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배달시장을 개척, 지난해 거래액 5조원으로 키운 결과물이다.


반면 새로운 모빌리티를 지향한 '타다'는 불법 서비스 논란으로 벼랑 끝에 섰다. 검찰은 타다를 만든 두 창업자를 기소했고, 국회는 올해 총선을 앞두고 택시업계 100만 표심을 의식해 이른바 '타다금지법'을 통과시키려 총대를 멨다. 정부는 신산업(모빌리티)과 기존 산업(택시)이 충돌하자 기존 산업 편에 섰다. 문재인정부의 혁신성장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창업자가 아이디어로 신사업을 키울 수 있도록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고, 기존 산업과의 갈등에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韓 모빌리티 결국 '갈라파고스'

지난해 8월 발간된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상위 100대 스타트업이 국내에서 사업한다고 가정할 때 절반 이상인 53%는 규제로 인해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13곳의 경우 아예 사업모델이 한국에서 금지돼 사업을 할 수 없었다.

세계지식재산권기구가 발표한 지난해 글로벌혁신지수에서도 한국 종합지수는 11위이지만 규제환경은 45위로 다른 지수보다 낮다.

사업이 불가능한 스타트업엔 디디추싱, 그랩 등 모빌리티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실제 한국 모빌리티 기업은 '자가용이 아닌 택시에 정보기술(IT)'을 결합하는 제한적 환경에서 사업을 하는 '택시·모빌리티 상생법(택시제도 개편방안)'이 법제화 단계를 밟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의 후속 조치로 '카풀 제한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출퇴근 2시간만 카풀을 허용하는 규제가 생기면서 카카오카풀, 풀러스, 어디고 등 카풀 서비스는 종적을 감췄다. 렌터카 기반 이동서비스 타다도 '타다금지법'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 불법으로 서비스를 접을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승차공유기업 우버가 탄생한 미국 승차공유 시장 규모만 지난해 약 490억달러(약 57조원·스태티스타 추산)로 예상된다. 글로벌 차량공유 시장으로 확대하면 규모는 오는 2025년 약 1970억달러(약 229조원)로 급증한다. 반면 국내 택시시장 규모는 지난 2011년 8조9000억원에서 2016년 8조200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정부 주도의 플랫폼택시 시장이 활성화되면 이 시장 규모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은 승차공유 중심으로 급성장한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흐름과 달리 '택시 모빌리티'가 중심이 되면서 제한적 성장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창업의지 꺾는 포지티브 규제

지난해 스타트업 누적투자금은 약 4조원에 육박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집계 기준 2019년 11월까지 누적투자금은 3조8115억원으로 2018년(3조1241억원)보다 약 22% 늘었다. 정부가 편성하고 집행한 정책자금 영향이다. 문재인정부는 올해도 4조5000억원의 정책자금을 시장에 풀어 혁신성장의 고삐를 죌 계획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정부가 투자는 민간에 맡기고 창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완화하거나 스타트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투자→성장→회수(엑시트)→재투자'로 이어지는 창업 생태계를 탄탄하게 만들고 유니콘기업이 계속 나오기 위해서는 정책자금 비중을 낮추고 민간자본을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가 만든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높지 않다"면서 "이 경우 기업·정부간거래(B2G) 시장을 정책적으로 열어주면 갑자기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은 지난 5년간 경영실적 등을 내야 하는 B2G 시장에 진입 자체를 할 수 없다.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해서다.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규제개혁은 법에 규정된 것만 할 수 있는 '포지티브 규제'를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8일 네이버 개발자 행사 '데뷰 2019'에서 "개발자가 마음껏 상상하고 도전할 수 있는 마당을 정부가 만들고 지원하겠다"면서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규제의 벽을 과감히 허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같은 날 검찰은 시행령 예외조항을 활용해 타다 서비스를 만든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를 불법 유상운송을 했다고 기소했다. 스타트업 업계는 "창업자를 범죄자로 내몰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질식시켰다"고 격앙된 성명서를 냈다. 콜버스, 풀러스에 이어 타다까지 좌초하는 모빌리티 잔혹사가 반복되면서 스타트업의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진 것이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두렵거나 불안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규제샌드박스 '한계'

정부 주도의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가 시행되면서 일부 스타트업의 숨통은 트였지만 정부의 후행규제 완화는 신사업 육성에 근본적 한계점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한 해 규제샌드박스에 접수된 과제 총 113건 중 95건이 처리됐고, 정부는 올해 규제샌드박스 200건 처리를 목표로 내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DNA 분석장비를 보유한 제노플랜에 규제샌드박스로 DNA 80개를 분석하도록 허가했다"면서 "하지만 해외 경쟁사는 400개를 분석하는데 이 같은 규제샌드박스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규제샌드박스 역시 기존 산업과 신규 사업자 간 충돌을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 기반 폐차 견적서비스 조인스오토는 기존 폐차장 업계, 내·외국인 공유숙박 서비스 위홈은 기존 숙박업계가 각각 반발했다.


차두원 전 KISTEP 연구위원은 "정부가 규제 중재자 역할을 어려워하면서 새로운 실험을 통해 비즈니스로 발전할 수 있는 많은 디지털 기반 산업 탄생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규제 거버넌스의 정교한 설계와 운영이 필요하고 규제샌드박스 역시 효율적 운영전략을 마련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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