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으로 유죄 받고 '집행유예'…이례적 판결일까?
2020.01.04 10:00
수정 : 2020.01.04 10:00기사원문
[편집자 주] '리뷰Law'는 변호사의 리뷰로 사건을 뜯어보는 코너입니다. 법률사무소 '창림'의 송창석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지난달 성폭행에 대한 두 가지 판결이 화제를 모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강지환과 A씨는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강지환의 형량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A씨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었다.
성폭행 유죄와 집행유예라는 다소 이질적인 단어 조합에 네티즌의 시선은 싸늘했다. A씨의 2심에서 "죄질이 좋지 않고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음을 고려했다"고 밝힌 재판부는 비아냥의 대상이 됐다. 일각에서는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집행유예가 적절했는지 여부를 차치하고 '이례적인 판결이었는가'만 놓고 본다면, 그렇지 않다.
송창석 변호사에 따르면 감형요소가 있을 경우 강간죄에 대해서도 집행유예가 드물지 않게 나온다. 일반강간죄의 기본 형량은 2년 6개월~5년이다. 법원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할 경우 형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징역 2년 6개월인 강지환과 A씨가 집행유예를 받은 이유다.
이들은 모두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렀다. 피해자는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합의서와 처벌 불원서, 형사처벌을 받은 전과가 없다는 점 등은 감형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송 변호사는 "3년 이하의 징역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은 강간죄라 해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라며 "초범이고 피해자가 선처를 원한다고 의사표시한다면 집행유예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성폭행 피해자는 합의하면 안 되는 걸까?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성폭행 기사의 단골이 되는 댓글로, '피해자는 왜 합의를 했는가?'에 대한 것이다. 성폭행 사건에서 '합의'나 '돈'이 등장하면 피해자의 진정성은 의심받기 일쑤다. 실제로 강지환 사건의 경우도 '피해자가 합의금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내용의 댓글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성폭행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피해자가 법정에 출석할 때 화장기 없는 얼굴로 자신의 고통을 울면서 진술해야 한다는 선입견 등이다.
수사부터 재판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소요된다.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2차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수사를 받으며 피해 상황을 수도 없이 곱씹고 언어로 토해내야 한다. 피의자로부터는 끈질기게 합의 요구를 받는 일도 다반사다.
민사상 불법행위(민법 750조)가 성립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민사사건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형사절차에서 합의로 받는 보상보다 금액이 적은 경우가 많다.
송 변호사는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게 해달라며 합의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답고, 합의하는 것은 피해자답지 않다는 시선은 재고되어야 한다"며 "자본주의를 택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민법 규정을 고려했을 때 돈이 보상의 기준이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가해자는 진심으로 죄를 뉘우쳐야 한다"면서도 "보상을 통한 합의·감형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으면 과연 누가 합의를 봐서 피해자의 고통을 덜 수 있게 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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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