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노인들은 '굶주림' '고독'이 두렵다

      2020.02.19 10:30   수정 : 2020.02.19 10:2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 지난 18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영하의 날씨에도 한 노인이 차가운 계단에 앉아 있다. 춥지 않냐고 묻자 "갈 곳이 없다"고 답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홀로 산다는 이 노인은 1시간 반 동안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에 왔다.

인근 무료급식소에서 끼니를 때우고 노인복지센터에서 대화 상대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노인복지센터가 휴관하자 갈 곳을 잃었다.
노인은 "햇볕 드는 곳에 조금만 앉아 있다가 집에 갈 것"이라며 몸을 떨었다.


■잇단 휴관..."추운데 어디 가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노인복지센터와 경로당 등 시설이 줄지어 휴관하고 있다. 특히 29번째 확진자와 그의 부인인 30번째 확진자가 종로구 인근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는 사실이 전해져 경계심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19일 종로구 등에 따르면 현재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노인복지센터를 비롯해 인근 복지센터는 대부분 휴관 중이다. 당초에 15일까지 휴관 예정이었던 서울노인복지센터는 1주일 연장해 22일까지 휴관한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도 지역에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휴관을 1주일 연장했다. 종로구 관내에서 운영 중인 62개 경로당 중 24곳이 휴관 상태로, 잠정 중단을 요청하는 경로당은 앞으로 더 늘어갈 추세다.

복지시설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노인들은 갈 곳 잃은 처지가 됐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하루 평균 1000명의 노인이 방문한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노인도 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노인도 적지 않다. 복지시설에 오지 않으면 하루에 한마디도 말할 기회가 없는 노인들에게 휴관은 매우 우울한 소식이다.

이날 탑골공원에서 만난 80대 최모씨는 "난방도 잘 안 되는 쪽방에서 혼자 있으면 관짝이 따로 없다"며 "어디든 나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종로에 오는데 갈 곳이 없다. 서글픈 삶 아닌가"라고 털어놨다.



■"코로나보다 두려운 건 고독과 굶주림"

탑골공원 인근에 위치한 한 무료급식소는 연중무휴로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구청과 휴업도 논의했지만 영업을 이어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3500원에 식사를 제공하는 인근 복지센터가 휴관하면서 무료급식소까지 닫으면 노인들이 식사할 곳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와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무료급식소를 찾는 노인들은 하루 평균 250명을 웃돈다. 무료급식소 관계자는 "가족에게 외면받고 밖에서 배 곯는 노인들을 보면 문을 닫을 수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오전 11시 20분부터 제공하는 무료 급식을 먹기 위해 아침 7시에 와서 번호표를 끊고 4시간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식사 시간이 되자 급식소 앞에는 변함없이 노인들이 줄을 섰다. 고소한 밥 냄새에 노인들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식사 후에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지하철 타러 가야지"라고 말했다. 그나마 형편이 되는 날에는 인근 다방이나 패스트푸드점에 간다고 한다.
급식소 관계자는 이들에 대해 "코로나19보다 고독과 굶주림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이라고 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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