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들..니트족 & 코쿤족
2020.03.10 17:36
수정 : 2020.03.10 19:06기사원문
"고시를 접고 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네요."
서울의 명문 사립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김준씨(가명·33)는 1년 동안 '자체 휴업' 중이다. 김씨는 2009년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국가공무원 5급 공채에 매진했다. 시험 고지를 몇 번이나 아쉽게 놓치고 나서 그는 늦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왔다.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특별히 하는 일 없는 쉬는 청년층인 니트족이 매년 늘고 있다. 일할 나이의 청년층이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가경제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인구는 전년보다 23만8000명 늘어난 209만2000명이었다. 관련 통계를 시작한 2003년 이래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었다. 증가율(12.8%)은 2011년(13.3%) 이후 8년 만에 가장 높았다. 문제는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쉬는 인구가 늘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쉬었음' 인구 증가세는 20대 17.3%, 30대 16.4%, 50대 14.0%, 40대 13.6%, 60세 이상 10.3% 등이었다. '쉬었음' 인구가 해당 연령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대 5.2%, 30대 2.9%, 40대 2.7% 등이었다.
7년 동안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이인진씨(가명·37)도 니트족으로 생활한 지 3년이 지났다. 한 의류 브랜드의 티셔츠 디자이너였던 이씨는 사업 철수를 빌미로 권고사직 당했다. 이후 이씨는 재취업을 준비했으나 번번이 기회를 놓쳤다. 이씨는 그 뒤로 집에 박혀 디자인 시안만 바라보기 일쑤다.
4년째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홍근식씨(가명·32)도 마찬가지다. 홍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든다"며 "최근에는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고 토로했다.
청년실업이 만성화되자 니트족으로 전락할까 두려워하는 청년층도 같이 늘고 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발표한 구직자 356명을 대상으로 '나도 니트족?'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구직자 10명 중 4명은 '매우 높다(40.7%)'고 답했고 '높다' 34%, '낮다' 18.5%, '아주 낮다' 4.5%였다. '이미 니트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도 2.3%나 됐다.
니트족 양산은 결과적으로 국가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일할 나이의 청년층이 기술과 시간을 허비하면 국가경제에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니트족의 경제적 손실은 이들이 취업했을 경우 받을 수 있는 근로소득으로 정의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니트족의 연간 경제적 비용은 2010년 34조7000억원을 기록했으며 2017년에는 49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니트의 경제적 비용 비중은 2010년 2.6%를 기록했으며 이후 부침을 보이다가 2015년부터 증가세를 이어가 2017년에는 2.7%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 연구위원은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018년 이후에도 21% 이상을 기록해 니트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소득 하위계층에서 니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청년취업 지원정책은 저소득층 중심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쿤족 : 외부 세상으로부터 도피해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에 머무르는 칩거 증후군
"피곤할 일은 만들지 않는 게 좋아요."
전업투자자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이규빈씨(가명·39)에게 과거 직장 생활은 '고난'의 시절이었다. 그는 건설자재 회사 영업사원으로 6년 동안 근무했다. 그는 직장생활 하는 동안 접대와 괴롭힘 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씨는 "오전에는 직장 상사가 나를 혼냈고, 저녁에는 거래처 대리가 갑질을 하기 일쑤였다"며 "정수리에 탈모가 생기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어 회사를 나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퇴사 후 주식투자에 전념했다. 이씨는 3년 동안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 않을 돈을 벌고 있다. 퇴사 이후 그에겐 철칙이 생겼다. 쓸모없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말이다. 전업투자자가 된 이후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은 매달 두번 투자스터디 모임이 전부다.
AM 7:30
알람 소리에 잠을 깬 이씨는 반쯤 감은 눈으로 집 현관문을 연다. 그가 어제 저녁에 주문한 식료품이 새벽에 배송됐다. 그는 배송된 계란과 빵 등으로 가볍게 아침을 해결한다. 그의 출근지는 바로 옆방이다. 옆방에는 가로, 세로로 뉘여 있는 3개의 모니터 스크린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씻지도 않은 채 '밥벌이'를 준비한다. 전날 미국 주식시장의 결과를 정리하고 주식 전문 유튜버의 아침 방송을 본다. 배달된 조간신문을 뒤적이며 주식시장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AM 11:30
+40만원. 주식시장에서 초단타 거래를 즐기는 그의 아침 결과다. 이씨는 "아침 9시 장이 열리면 11시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며 "오전 장에 돈을 벌어야 밥 먹을 자격이 주어진다"며 미소 지었다. 그의 점심 메뉴는 언제나 똑같다. 라면이다. 그는 면발을 입에 넣으면서도 주식 차트를 주시하고 있다. 이씨는 "남들이 보면 한심하게 보여도 나는 요새 가장 행복하다"며 "사람들에게 치여 사는 게 가장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PM 6:00
저녁도 혼자다. 그는 해가 질 때쯤에야 씻기 시작한다. 아침부터 쌓여 있는 설거짓거리도 해결한다. 거실에서 놀고 있는 반려견들의 간식도 챙겨준다. 이제 휴식이 시작됐다. 허기를 느낀 이씨는 휴대폰을 열고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을 켠다. 이날 식사는 1인 보쌈세트다. 그는 맥주 한 캔과 함께 지난주 방영된 예능방송을 본다.
PM 9:00
그는 불필요한 관계가 사라진 뒤에야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오직 '보여지는 나'에 집중했다"며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명품 시계를 사곤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거금을 들여 대형 OLED 모니터를 구매했다. 저녁 식사 이후 대다수 시간을 콘솔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는 데 투자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사는 것도 여러 노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집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삶이라고 이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