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승 하면 1억원 준다고?… 술자리 내기가 대기록 만들어
2020.04.08 18:41
수정 : 2020.04.08 18:41기사원문
장명부는 4개의 이름을 지녔다.
결혼하면서 처가의 성을 따라(이때 일본으로 귀화) 후쿠시 아키오로 바꾸었고, 다시 후쿠시 히로아키로 개명했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면서 아버지(장득룡)가 물려준 장명부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83년 한 해 장명부가 보여준 활약은 경이로웠다. 다시 있을 수 없는, 어떤 면에선 있어서도 안 될 기록을 남겼다. 이해 장명부는 팀의 100경기 가운데 60경기에 등판했다.
던진 횟수는 자그마치 427⅓이닝(참고로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최다 투구 이닝은 린드블럼의 194⅔).
물론 427⅓이닝도 메이저리그 시즌 최다 투구 이닝(680·윌 화이트)에 비하면 약과다. 하지만 그 기록은 1879년에 세워졌다. 야구의 석기시대 시절이었다.
당시 화이트의 나이는 24살. 장명부는 33살이었다. 일본 프로야구 기록은 하야시 야스오가 1942년 세운 541⅓이닝. 일본 프로야구의 청동기 쯤 된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2위는 최동원의 284⅔이닝이다.
장명부는 무려 44경기에 선발로 나왔다. 16경기는 구원등판. 44경기 가운데 36번을 완투했다. 완투승만 26차례(5완봉승 포함).
5월 한 달 동안 그는 9승이나 올렸다. 8월에는 완투승을 한 다음 날 경기서 2이닝을 던졌고, 그 다음 경기서 다시 2⅓이닝을 던졌다. 가을 야구가 아닌 정규 시즌 경기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장명부는 또 마운드에 올랐다. 그것도 마무리나 중간이 아닌 선발로. 그리고는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쯤 되면 철완이라는 말조차 무색하다. 그저 놀라울 따름. 장명부는 대체 왜 이런 미친 시즌을 보냈을까.
그를 자극한 것은 구단 사장의 말 한 마디였다. 장명부는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의 에이스였다. 두 차례 15승을 기록했다. 1982년 허리 부상으로 3승에 그치자 트레이드설이 나왔다. 잽싸게 그를 낚아챈 것은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창단 첫해 꼴찌를 한 삼미는 팀의 기둥 투수가 절실했다.
계약금 연봉 포함 총 4000만엔(약 4억5000만원·여러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공식 발표에 따랐다)을 받았다. 큰돈이긴 하지만 당초 삼미가 약속한 액수보단 턱없이 적었다.
장명부는 단단히 화가 났다. 기자회견서 예상 승수를 묻자 "30승은 할 수 있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말도 안 되는 승수였다. 시즌 100경기가 전부인데 어떻게 30승을? 기자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허풍도 정도껏이라야지.
그날 저녁 자리에서 일이 벌어졌다. 구단 사장과 여럿이 어울려 함께 저녁을 먹었다. 술이 곁들여진 게 화근이었다. 낮에 있던 기자회견이 화제로 떠올랐다. 30승 얘기를 비웃기나 하듯 구단 사장이 "정말 해내면 보너스로 1억원을 주겠다"고 내뱉었다. 순간 장명부의 눈이 동그래졌다. <계속>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