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자니 대량해고 풀자니 갑질속출··· 당국, 입법방향 놓고 고심

      2020.05.24 11:12   수정 : 2020.05.24 11:1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아파트 경비원 갑질 논란은 결국 법적 제도적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범위를 놓고 관련 법안 정비가 뒤늦어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다. 관련 부처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파트 경비원 업무 범위를 조율중이지만 합리적 절충안 찾기에 고심중이다.

경비원의 업무범위를 최소한으로 확정할 경우 고용불안이 예상되는 반면, 다양한 업무를 하도록 풀어주면 '갑질'이 속출할 수 있다. 주무부처인 경찰청과 국토교통부는 연내 법규를 정비한다는 입장이지만 이해 당사자들간 상반된 입장 차 탓에 난감한 표정이다.



■속출하는 부작용··· 당국 연내 법 재정비
24일 국토부와 경찰청 등에 따르면 경비원의 업무를 규정한 경비업법 제7조 제5항의 특례조항 신설을 두고 경찰청과 국토부 간에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들 조항은 경비원에게 경비업무 외의 업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데, 기존에 허용된 경비원의 업무에는 외부침입 등 거주자의 위험을 막는 업무에 더해 택배수령과 주차관리 정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경비원에게 다양한 업무가 주어지는 관행을 무시할 수 없어 택배물품 도난방지를 위한 일시보관, 제설작업 등도 허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비원의 위험방지 역할을 확대해 적용한 결과다.

문제는 쓰레기 분리수거와 청소 등 경비원의 업무가 아니지만 상당수 경비원이 실제 수행하고 있는 업무를 명문으로 금지할지 여부다.

경찰청은 특례규정을 두어 이를 허용할 경우 경비원의 업무가 무한정 늘어나 속출하는 입주민 갑질이 더욱 심해질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경비원 업무범위를 엄격히 틀어막으면 굳이 경비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없어 입주민들이 경비업체에 더 적은 돈을 지불하고 인력을 적게 고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청소 등 다른 업무는 별도의 전문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게 돼 기존에 근무하는 경비원이 대량 해고위협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일부 공동주택에선 입주자대표회의가 정하는 것이 곧 경비원의 업무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비업법이 경비원의 업무범위를 엄격히 정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법 적용에 허점이 있고, 아파트 등 공동주택 관리 전반을 다루는 공동주택관리법에선 아예 관련 규정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법 미비는 경비원이 입주자들에게 90도 인사를 강요받고, 화단 잡초를 제거하다 열사병으로 입원하며, 강북구 모 아파트 사례와 같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법률 공백 속에서 입주자대표회의로부터 계약을 따낸 경비업체들은 재계약을 위해 입주자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비용절감에 주력하게 된다. 간접 고용된 경비원들은 완전한 '을'의 상황에서 입주민들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밖에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깊어지는 고민
경찰 관계자는 “경비랑 전혀 관련 없는 업무를 법에서 못하게 한 것이다. 청소랑 분리수거, 미화업무 같은 것들”이라며 “일단 예외를 두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반대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예외를 많이 두면 최근 경비원(의 극단적 선택) 사건처럼 인권침해 얘기가 나올 것이며, 엄격하게 적용하면 대량해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며 “두 가지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절충안을 검토 중”라고 덧붙였다.

행정업무나 주민들에게 동의서를 받아오는 업무 등 단순 심부름 등 규정이 완화될 경우 경비원이 맡게 될 업무는 상상을 초월한다. 법은 바꿔야 하는데 조일 수도 풀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선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입주민에게도 물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기존엔 경비원에 대한 위법행위가 발생하면 경비업체가 책임을 물었지만 이를 입주자대표회의에게도 함께 묻겠다는 것이다. 경비업체가 을의 입장에서 입주자들의 갑질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다수 아파트와 용역계약을 체결한 한 위탁경비업체 관계자는 “입주민이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데 회사 차원에서 거부하기 어렵다”며 “무리한 요구가 아니면 눈치껏 하라고 하지 어디다 신고하라고 할 수는 없는 입장 아니냐”고 토로했다.
입주자대표회의에게 책임을 지울 필요가 있는 이유다.

한편 국토부와 지자체 등은 경찰청의 입장정리에 따라 후속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처음 경찰청에서 경비원이 오롯이 경비업무만 해야 한다고 문제를 짚어서 이렇게 (법을 바꾸기로 이야기가) 됐기 때문에 일단 그쪽에서 정한 후에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연내 마무리를 하기로 정했고 지금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니 경비업법이나 우리법(공동주택관리법)에 어떤 특례규정을 둘지 곧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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