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네이도 한가운데서 알았다, 그분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2020.07.07 16:49   수정 : 2020.07.07 18:28기사원문
2019년 4월 13일 토요일 오후. 우리는 텍사스주 잭슨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 참석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생태 발자국을 줄이는 방법에 대한 세미나였다. 우리 아들 마이클이 열정을 쏟고 있는 주제다.

아들은 우리에게 지구를 보존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항상 상기시킨다. 그에 따라 우리는 재활용을 실천하고, 최소한의 물로 샤워를 하며, 유기농 농법을 시도할 뿐만 아니라 이런 세미나에도 참석한다.
우리 스스로는 이 분야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잭슨빌에서의 세미나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우리는 훌륭한 지구의 관리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태양 전지판을 설치한다든지,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꾼다든지, 플라스틱과 생활 폐수를 줄이는 일들은 만만치 않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소명인데 우리가 은혜도 모르고 그 소명을 무가치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세미나가 끝나고 모두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사회자가 다시 무대로 나왔다.

"돌아가시는 길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앨토 근처에 토네이도 경보가 발효 중입니다."

남편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곳 텍사스주 북동쪽은 '토네이도 골목'(미국에서 토네이도가 가장 자주 발생하는 지역)에 속한 지역이다. 휴스턴에 있는 집까지 가려면 앨토를 거쳐야 했다. 우리는 경찰에 교통정보를 제공하는 현지 주민들의 안내를 따르면서 남쪽 방향 69번 국도를 타고 앨토를 향해 천천히 주행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토네이도가 이미 지나갔구나."

이윽고 앨토에 진입했다. 사방에 전봇대가 쓰러져 있고 불꽃이 위험하게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쓰러진 나무들과 무너진 주택들, 심하게 파손된 학교 건물들을 지나치며 혼자 중얼거렸다. "주님, 이 사람들을 보호해 주소서."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기는 하실까?"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로 돌아가신 2003년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거리감을 느낀 터였다. 10년에 걸쳐 아버지가 서서히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 괴로웠다. 처음에는 깜박깜박하시다 점점 정확한 단어를 찾는 일도 힘겨워하셨다. 결국 아버지는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모든 것을 잃으셨다. 더는 야구를 즐길 수 없게 되었고(젊은 시절 아버지는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다), 당신의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6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한 엄마와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들까지도. 나는 위로가 필요할 때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불러 주시곤 하던 '하늘에서 떨어지는 행운(Pennies From Heaven)'이라는 노래를 생각했다.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리면 나무 아래로 달려가지 말아요/당신과 나를 위해 하늘에서 행운이 떨어질 테니까요…"

어느날 주방 식탁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이 너에게 변화구를 던질 때마다 아버지가 네 곁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렴. 무슨 일이 있어도 말이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는 더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아버지같이 좋은 분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말이다.

우리는 이제 21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앨토 바로 외곽에 위치한 옛 아메리카 원주민 정착지인 '카도 역사 유적지'에서 열리는 축제 안내판이 보였다. 주차장에는 50여대의 차량이 있었다. 우리처럼 저들도 토네이도를 피한 운좋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뒤를 따라오던 차들도 우리가 지나가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그때 호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일반적인 문자 메시지가 아니었다. 긴급 재난 문자였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금 즉시 대피 요망."

남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찰나 엄청나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우리 차 앞 유리 위로 고꾸라졌다. 차는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멈춰섰다. "대피하기엔 이미 늦었어!"
물감을 쏟은 듯 하늘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바람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그때 나무 세 그루가 우리 위로 쓰러졌다. 미처 몸을 가눌 새도 없이 차가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더니 붉은 흙으로 덮인 경사진 비탈길 아래로 처박혔다. 나의 상상이었을까. 아니면 나무들이 가지를 이용해 차의 후미를 흙 속에 묻히게 했을까. 그래서 우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붙들어 준 것일까. 바람은 기어이 우리를 공중으로 잡아챌 듯한 기세로 더욱 세차게 불었다. 승합차는 균형이 맞지 않는 세탁기처럼 앞뒤, 위아래로 미친듯이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소리를 지르지도 숨을 헐떡이지도 못했다. 이상하게 평온했다. 나는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편과 나는 자세를 낮추기 위해 안전벨트를 최대한 길게 빼서 바닥으로 몸을 밀착시켰다. 그리고 흘깃 위를 보았다. 계기판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뜯겨 나간 것이다. 빨갛고 파란 전선들만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남편의 손이 내 손 위에 포개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남편의 손을 꼭 쥐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계기판 전선 아래쪽 바닥에 동전 하나가 반짝이는 것을. 동전이다! 이 바람에 어떻게 날아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있을까?

아버지가 치매로 한창 투병 중일 때 50대 중반이던 나는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학교로 돌아갔다. 학업은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겠지만, 특히 그 나이에 하는 공부란 진이 빠지는 일이었다. 다 포기하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석사학위를 받든 말든 누가 신경이나 쓸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반짝이는 동전을 발견했다. 땅 위에서, 분수대 옆에서, 도서관의 책더미 위에서. 동전은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마치 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아빠가 널 지켜보고 있단다." 그것은 우리집에서 두고두고 농담거리가 되었다. 아빠가 린다에게 보내는 메시지들. 토네이도에 포위당한 차 안에서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동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람은 여전히 맹위를 떨쳤고 비도 억수같이 쏟아졌다. 우리는 머리를 수그리고 서로를 꼭 껴안았다. 그때 불길한 어둠을 뚫고 금이 간 앞유리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드디어 토네이도가 끝났다. 우리는 목숨을 건졌다.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껍질과 가지가 전부 떨어져 나간 나무 한 그루가 우리 승합차 위에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다행히 떨어지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그 아래 깔려 죽었을지도 모른다.

"고마워요, 아빠." 나는 생각했다. 휴대폰으로 911에 전화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긴 했지만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았다. 휴스턴에 있는 언니 샌디와도 통화를 시도했다. 역시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형부 존에게서 전화가 왔다.

"처제, 괜찮아?" 형부가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형부에게 토네이도로 사고를 당한 이야기를 했다. 형부는 체로키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우리의 상황을 알렸다. 남편은 옆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해 우리를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경찰차가 멈춰섰다. 보안관이 우리 차를 보고는 물었다.

"사모님, 괜찮으십니까?"

네, 전 괜찮아요. 제 남편도요. 살아남았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구조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헬리콥터 3대, 경찰차 4대가 왔다. 그리고 주변 마을 사람들도 우리를 구하러 왔다.

몇 주 후, 부엌 식탁에 앉아 그날 있었던 사고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그리고 토네이도의 한가운데서,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 그로써 하나님에게 느끼던 거리감이 사라졌다.
우리 승합차를 땅속에 박혀 꼼짝 못하게 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특히 내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를 보내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바람과 비와 어둠을 뚫고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었다.
"아빠가 널 지켜보고 있단다."

글·사진=가이드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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