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속 어머님 예물 팔려고…" 코로나 사태에 금은방 향한 사람들
2020.07.09 15:24
수정 : 2020.07.09 16:44기사원문
#. 9일 서울 종로구 한 금은방. 50대 여성이 18k 금반지를 팔고 있었다. 금은방 업주가 20만원대 가격을 제시하자 이 여성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했던 시절의 꿈이 깃들어 있던 반지가 현금으로 바뀌는 시간은 짧았다.
"장롱 속서 나오지 말아야 할 물건이 나온다"
코로나19 여파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자 결혼예물과 돌반지까지 팔아 급전을 마련하려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경기불황 등으로 금값이 상승한 이유도 있겠지만 이 보다는 서민들의 생활고가 무섭게 체감된다는 말들이 종로 일대 금은방 취재에서 확인됐다.
금은방 업주 조모씨는 이날 "장롱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물건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 업계에서 26년을 종사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외환위기 시절까지 겪으며 많은 손님을 상대해왔지만 이러한 상황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에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는 사연이 있는 물건까지 파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반지 디자인과 사이즈를 보면 본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디서 구했냐고 물어보니까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이어 "아무리 어려운 시절이라 해도 과거에는 없던 모습"이라며 "당장 먹고 살 형편이 어려워서 애지중지하는 14k 한 돈쭝(3.75g), 두 돈쭝 짜리를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이 어디로 향할지 두렵기까지 하다"고 덧붙였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들이 금을 내놓기 시작한 건 금값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금값은 2011년 11월 이후 최고가를 보이며 한 돈쭝당 약 26만원을 웃돌고 있다. 4거래일 연속 상승해 전날 세운 9년 만에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금은방 업주 김씨는 "주머니에 돈은 없는데 금값은 오르니까 예물이라도 가지고 나와서 팔려고 하는 거 아니겠나"며 "금은방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경기가 체감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고 했다.
"경기가 안 좋으면 전당포도 못 간다"
금은방과 달리 전당포는 썰렁한 분위기였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전당포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는 예상은 실제와 달랐다. 종로 한 전당포 관계자는 7월 들어 물건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8년 간 종로에서 전당포를 운영했다는 최모씨는 "전당포에 오는 사람은 물건을 맡기고 나중에 '돈 갚을 여력'이 있다는 것"이라며 "수년간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이제 맡길 건 다 맡기고 팔아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야 명품 팔려고 전당포에 오는 사람이 있었지만 요새는 인터넷으로 팔고 있다"며 "전당포는 팔려는 사람도, 맡겨서 돈을 빌리려 하는 사람도 없는 사양산업이 됐다"고 토로했다.
전당포 관계자들은 수익구조를 이야기하며 "경기가 좋아야 전당포도 산다"고 강조했다. 전당포는 담보 대출 기간이 끝난 물건을 업자에게 판매해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으면 담보 물건에 대한 업계 수요가 적어서 현금화되지 않거나 이익이 적게 남는다.
최씨는 사무실 내 사파이어와 호박 등을 가리키며 "경기가 안 좋은데 누가 보석을 사겠냐"며 "중고 보석은 중국 업자들이 많이 사가는데 코로나19로 해외 길이 막히면서 판매처가 끊겼다"고 설명했다.
전당포 월세 240만원을 못 내고 있다는 또 다른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을 수록 전당포를 찾는 사람이 많은 거라는 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이야기"라며 "요새처럼 경기가 안 좋으면 전당포도 말라 죽는다"고 말끝을 흐렸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