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맨밥에 김치만 먹는다'… 채식주의자가 학교·군대에서 사는 법

      2020.07.20 17:44   수정 : 2020.07.20 18:07기사원문
#. 대학생 김모씨(25)는 군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편치 않다. 군대에서 먹어야 하는 음식 때문이다. 채식을 처음 시작한 고등학교 때는 도시락을 싸 가서 먹는 게 가능했지만 군대에선 채식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 직장인 백모씨(35)는 아내와 부쩍 다툼이 잦아졌다. 아내가 지난해 여름부터 채식을 시작하면서다.
백씨는 아내가 지난해부터 동물권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책에 관심을 갖더니 어류나 달걀은 먹지만 소·돼지·닭 같은 육류는 먹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개인의 신념이라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함께 식사할 일이 많다보니 불편이 작지 않다고 했다.  
20일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주의자 수는 지난해 기준 150만명 내외다.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vegan, 채소, 과일, 해초 따위의 식물성 음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인구도 수십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15만명에 불과하던 채식인구가 10년 만에 10배나 불어난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늘어나는 건 세계적인 추세다. 삶의 다양성이 강조되고 동물권과 환경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며 육식을 거부하거나 줄여나가는 운동이 하나의 문화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까탈스럽다' 불편한 시선


개인의 자유가 강조되는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사회에선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자리 잡았다. 회사나 학교 구내식당은 대부분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준비돼 있을 정도다. 식당과 마트에서도 채식주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미국 채식주의 시장은 지난해 45억 달러(5조4000억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인구 5% 내외가 채식을 하는 독일·프랑스·영국 등도 그 규모가 수조원대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의 채식주의는 '불편' '까탈스러움' '예민함'과 동의어다. 채식주의자의 선택지가 마땅치 않은 우리나라에선 채식주의자와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여러 가지 제약을 함께 감수하게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가 겪는 불편이 채식주의자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특히 각급 학교와 군대에서 급식이 일반화돼 있고, 대학교와 회사에서도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에선 채식주의자가 겪는 불편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채식주의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기보다는 하나의 취향쯤으로 여겨진다. 일례로 올해 헌법재판소는 '학교급식과 공공급식(군대·교도소 등)에서 채식주의자에게 선택지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채식주의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2건에 대해 모두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공공급식, 채식 배려해야"


공공급식에서 채식주의자가 밥과 김치 등 한 가지 반찬만 먹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안이 없는 공공급식의 경우 최소한 한 가지 반찬은 채소류로 편성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군복무를 앞둔 채식주의자들이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지만 국방부는 '조리병 취사 교육, 인력 및 시설 확충 등으로 인한 예산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며 난색을 표한 바 있다.


학교와 구내식당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채식주의자에 대한 선택지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영양사 이모씨(39·여) 역시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를 별도로 준비해본 적이 없다"며 "학생들의 취향을 일일이 맞춰 급식을 하려면 인력이나 비용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주요 급식업체 관계자도 "소비자선택권을 보장해주고자 채식메뉴를 테이크아웃 형태로 내놓는 곳이 수도권에 일부 있긴 하지만 한정적"이라며 "클라이언트 요구가 있으면 몰라도 먼저 채식메뉴를 준비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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