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신용대출 놓고 '눈치게임'…대출자들만 '혼란'

      2020.09.18 06:01   수정 : 2020.09.18 06:01기사원문
[서울=뉴시스] 조수정 기자 = 올해 1분기 가계빚이 1610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대출 창구에서 대출 희망자가 서류 등을 작성하고 있다. 2020.05.20.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 정옥주 박은비 기자 = 최근 급증하고 있는 신용대출을 관리 방안을 놓고 금융사들간 치열한 '눈치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의 연이은 '경고' 메시지에 자체적으로 신용대출을 조여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우대금리와 한도 축소, 심사 강화 등의 방안을 강구하고 나선 것이다.

은행들의 신용대출 조이기가 예고되자, 앞으로 1%대 신용대출 상품을 볼 수 없을 것이란 전망에 '막차' 타기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실제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15일 하루에만 3448억원이 늘었다.
월별 기준 역대 최대 증가폭(4조704억원)을 기록했던 지난달 하루 평균 증가액 대비 약 2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신용대출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자,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자금 흐름을 파악하는 등 실태 점검에 나섰다. 신용대출이 주택대출규제의 우회수단으로 활용되는 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며, 관련 규제 위반 시 엄중 조치하겠다는 방침도 알렸다.

특히 금융감독원은 지난 14일 주요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들을 소집하고 신용대출 한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하며, 은행별로 신용대출 관리 계획안을 제출하라고 주문한 상태다.

사실 그간 은행들은 신용대출 급증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신용대출은 보통 대출자의 직장, 소득, 연체 경험, 부채 수준 등을 검증한 뒤 나가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은행들은 올 연말까지의 신용대출 총량 관리 계획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고, 결국 고소득·고신용자들을 중심으로 금리와 한도를 건드리는 쪽으로 짜고 있다. 하지만 금리 0.1%차에도 고객을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영업 환경에서 누가 먼저 어떻게 '총대'를 맬지 은행들 간 눈치게임이 한창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솔직히 수익을 계속 내야 하는데 급격하게 대출 한도를 줄일 수는 없다"며 "고소득 내지 고신용자 한도를 일부 낮추거나 우대금리를 축소하는 방법 밖에 없는데 고객들은 그 순간 바로 다른 은행으로 이탈할 것이 분명해 은행끼리 누가 먼저 할지 서로 눈치 보기 바쁘다"고 토로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각 은행들은 우대금리 적용 폭과 수준을 하향 조정해 신용대출 금리 수준을 올리고,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을 포함한 특수직 등에 대한 신용대출 한도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법조인과 의료인 등 전문직은 은행에서 많게는 연 소득의 200%까지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신용대출마저 과도하게 조일 경우, 결국 그 피해는 자금이 절실한 서민들도 입게 될 것이란 우려가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제적 사안을 정치적으로 풀려다 보니 문제가 된 것이지, 사실 신용대출 증가는 경제적으로만 보면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신용대출은 생활비나 투자 등으로 쓰여 경제가 잘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특별히 경제위기가 오지 않는 이상 리스크 관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소득, 고신용자들이 제일 큰 피해를 보겠지만, 전반적으론 금리 상승 등으로 인해 일반 신용대출자들도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도 "결국 (자금이)부동산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신용대출을 조이자는 건데 당국이 공식 규제를 하기에는 부작용이 커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규제를 한다면 건전성 규제로 해야 하겠지만 은행들의 건전성 지표에 문제가 없는 상태라 (금감원이) 구두로 총량 규제, 고신용자 한도 축소 등 메시지를 준 걸로 본다"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고신용자의 한도를 축소하면 당장은 고신용자가 제일 큰 피해를 보는 것 같아도 나머지 고객들에게 피해가 없는 게 아니다"라며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대출자 모두에게 간접적으로 피해가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신용대출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자, 일각에서는 시장의 혼란을 줄이려면 차라리 금융당국이 공식적으로 규제 방안이나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것이 낫겠다는 '볼멘' 목소리마저 나온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이 조만간 고신용·고소득층을 겨냥한 '핀셋 규제'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 신용대출을 잘못 건드렸다가 서민들의 '돈줄'을 죄는 부작용만 나타나거나, '관치금융'이란 비판에도 시달릴 수 있어 금융당국은 여전히 고심만 거듭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의 신용대출 증가세에 대해 예의주시하면서 원인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면서도 "아직까지 당국 차원에서 별도의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계획은 없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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