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규제, 규제… 어떤 기업이 견딜 수 있나
2020.09.24 18:05
수정 : 2020.09.24 18:05기사원문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5년 독일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 뒤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었고, 2018년엔 독일 BMW 일부 차량에서 자꾸 불이 나는 바람에 소비자들이 불안에 떨었다. 그러자 지난해 9월 당시 조국 법무장관은 당정협의에서 집단소송제 전면 확대 방침을 밝혔다. 그로부터 1년 뒤 추미애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는 제정안을 내놨다. 소비자 권익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집단소송제는 그 나름 명분이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그야말로 기함할 노릇이다. 이른바 '공정 3법'도 벅찬 마당에 정부가 새로운 대형 규제법을 또 내놓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마치 밀린 숙제 하듯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지금이 호기라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집단소송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소비자 보호라는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부작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먼저 소송남발이다. 집단소송제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겹치면 소비자는 일단 소송부터 걸고 보자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이기 때문이다. 변호사들이 기획소송을 부추길 공산도 크다. 배상의 판돈이 커지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제가 없는 지금도 제조사들은 소비자 소송에 휘말릴까 전전긍긍한다. 긴 재판 과정에서 이미지 추락이 불가피해서다. 삼양라면은 1989년 공업용 우지(소기름) 파동을 겪었다. 8년 소송 끝에 결국 재판에서 이겼지만 시장 판도는 이미 뒤집혔다. 집단소송제를 산업 전 분야로 넓히면 제2, 제3의 삼양라면 사태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집단소송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흔히 미국의 예를 든다. 종종 미국에선 기업이 천문학적 배상금 탓에 휘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근본적으로 규제방식이 다르다. 미국은 사후규제가 원칙이다. 일단 풀어준 뒤 말썽이 생기면 세게 때린다. 한국은 사전규제가 원칙이다. 여기에 집단소송제까지 전면 도입하면 사후규제까지 덧대는 격이다. 규제지옥이 따로 없다. 한국 경제에서 기업은 보물 같은 존재다. 집단소송제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