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이 묻어났던 자기복제, 결과는 실패
2020.10.02 10:00
수정 : 2020.10.02 10: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2006년 <열혈남아>, 2010년 <아저씨>에 이어 4년 주기로 내놓은 이정범 감독의 3번째 장편 <우는 남자>다. 그는 다시 4년 후인 2018년 <악질경찰>을 선보였으니 4년 주기설은 정설이 되는 분위기다.
그의 작품 중에서 <우는 남자>는 개봉 전 가장 주목받은 영화다.
영화에서 장동건이 연기한 인물은 냉혹한 킬러 '곤'이다. 미네소타 사막에 홀로 남겨져 무정한 킬러로 성장한 곤을 수려한 외모의 장동건이 연기한다는 게 얼핏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원빈을 메마른 전직 특수요원으로 재탄생시킨 이정범이기에 기대가 적지 않았다.
영화의 도입에서 곤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다 실수로 한 소녀를 죽인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그에게 조직은 한국으로 가서 다른 인물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곤은 마지막 임무라는 조건으로 명령에 응한다. 한국에 온 곤은 자신의 타깃이 지난 임무에서 실수로 죽인 소녀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곤은 결국 임무수행을 거부하고 그녀를 위협하는 조직의 마수에 맞서 총을 잡는다.
<아저씨>의 차태식과 <우는 남자>의 곤
<우는 남자>를 감독의 전작 <아저씨>와 비교하는 건 감상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단지 전작이란 점 뿐 아니라 두 영화가 상당히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죄를 가진 남자가 옆집 소녀를 지키려 범죄집단과 맞선다는 게 <아저씨>의 설정이라면, <우는 남자>는 소녀를 죽인 죄책감을 가진 킬러가 그녀의 어머니를 지키는 내용이다. 한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초적 죄책감에 고통받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지켜내려 모든 걸 걸고 싸운다는 설정이 영화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얼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영화가 모든 면에서 같은 건 아니다. 규모의 차이 말고도 차태식과 곤은 성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우선 <아저씨>의 차태식은 2000년대 한국영화에서 가장 메마른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닝타임 내내 단 몇 마디의 대사를 읊조린 게 전부였던 그는 영화 전체를 우수 짙은 눈빛과 무표정으로만 일관했다. 소녀를 구출하기 전까지 차태식에게서 표출된 감정이 오직 분노 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건조한 인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는 남자>의 곤은 한 층 인간적인 캐릭터다. 아픔을 감춘 냉혹한 킬러이면서도 처음보는 소녀에게 웃음을 보이는 그에게서 관객들은 비현실적 건조함 대신 따스한 내면을 느낀다. 몰입할 수 없을 만큼 건조한 차태식의 폭력으로부터 역설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면, 갈등하고 변화하는 곤에게선 공감과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곤은 비교적 많은 대사를 소화하며 다양한 표정을 선보인다.
변신보다는 선택과 집중했어야
액션 그 자체에 치중했던 <아저씨>에 비해 드라마의 양을 대폭 늘린 선택은 실패인 것처럼도 보인다. 신선하면서도 강렬한 액션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아저씨>와 달리 엉성한 드라마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캐릭터의 멋이 살지 못한 것이다. 규모와 드라마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음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너무 늦고 말았다.
다만 모든 면에서 실망스러운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장미아파트에서의 액션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해도 될 만큼 인상적이다. <아저씨>에서 보여준 신선함은 없었으나 다양한 무기를 통한 액션이 볼거리와 재미의 측면에서 나름의 맛을 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정범 감독은 여전히 단 네 편의 영화만 찍은 중견 감독이다. 그의 다음 영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