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복수 국적자‘ 18세에 국적선택 의무 ’헙법불합치‘..병역기피 악용 우려도

      2020.10.08 12:00   수정 : 2020.10.08 12: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미국인과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자동으로 복수 국적을 갖게 된 이른바 '선천적 복수 국적자' 남성이 만 18세때 국적 선택 시기를 놓치면 20여년 간 한국 국적을 유지토록 한 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병역의무를 해소하기 전에는 어떠한 예외도 인정하지 않고 국적이탈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들이 국적이탈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위헌 결정이 원정출산 등에 따른 병역회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추후 법 개정과정에서 세심한 대책이 요구된다.



■일률적 국적법 규정 제동..“국적이탈 자유 지나치게 제한“
헌재는 복수국적자가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때부터 3개월이 지난 경우 병역의무 해소 전에는 대한민국 국적에서 이탈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국적법 제12조 제2항 본문 및 제14조 제1항 단서 중 제12조 제2항 본문에 관한 부분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위헌)대 2(합헌)로 헌법불합치 결정했다고 8일 밝혔다.

현행 국적법은 미국 등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도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면 선척적으로 복수국적을 갖게 된다. 남성은 병역준비역에 편입되는 만 18세 때 이후 3개월 내에 한국 국적 포기를 결정해야 하고, 이를 넘길 경우 병역 의무를 완수하거나 병역 면제 판정을 받지 않는 이상 38세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다.

지난해 만 20세가 된 A씨는 만 18세 때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만 38세까지 한국 국적을 유지하도록 강제한 법 조항들이 국적 이탈 자유 등 자신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A씨는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시민권이 있지만 한국인 어머니 때문에 대한민국 국적을 함께 취득한 재미교포 2세다.


헌재는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 기간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 내 국적이탈 신고를 하지 못한 데 대해 사회통념상 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정 즉,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고,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라는 입법목적을 훼손하지 않음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라면,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복수국적자에게 국적선택 기간이 경과했다고 일률적으로 국적이탈을 할 수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국적이탈을 허가하는 방안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며 위헌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병역 회피시도 대안 마련 주문도
헌재는 위한 결정에 따른 병역 의무 회피 시도 우려에 대해선 “주무관청이 구체적 심사를 통해 주된 생활근거를 국내에 두고 상당한 기간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혜택을 누리다가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할 시기에 국적을 이탈하려는 복수국적자를 배제하고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국적선택 기간이 경과한 후에도 국적이탈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한다면,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불식될 수 있다”고 봤다.

위헌 판단에는 출생과 동시에 신고 없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복수국적자가 주된 생활근거를 외국에 두고 학업이나 경제활동 등의 생활을 해 온 경우 복수국적 취득과 국적이탈 등에 관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 헌재는 다만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국적선택이나 국적이탈에 대한 기간 제한이 정당한 경우에도 그 제한이 즉시 사라지게 돼 병역의무의 공평성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며 2022년 9월30일까지만 해당 조항의 효력을 유지하도록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반면 이선애, 이미선 재판관은 “복수국적자는 18세가 돼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때부터 3개월이 지나기 전이라면 자유롭게 국적을 이탈할 수 있고, 그 이후부터 병역의무가 해소되는 시점까지만 국적이탈이 금지된다.
해당 조항은 헌법이 요청한 병역부담평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회적 합의에 따른 면밀한 기준 설정 없이 개개인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섣불리 그 적용의 예외를 허용해선 안된다“며 합헌 의견을 냈지만 합헌 정족수(4명)에 이르지 못했다.

헌재 관계자는 “주된 생활근거를 국내에 두고 상당한 기간 한국 국적자 혜택을 누리다가 병역의무 이행시기에 국적을 이탈하려는 복수국적자는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를 저해하므로 허용되기 어렵지만 외국에 주로 체류·거주하면서 대한민국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며 ”심판대상 조항은 전혀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시기가 경과하면 병역의무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만 국적이탈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헌재는 이런 일률적 제한에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판대상 조항의 입법목적인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는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이들 조항이 입법목적의 달성에 기여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따라서 향후 입법자는 이러한 입법목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면서도 주무관청이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 국적이탈을 예외적으로 허가할 수 있는 적정한 기준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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