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먹이주기, 지자체 몫이다?
2020.10.22 17:04
수정 : 2020.10.22 17:04기사원문
지난 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길고양이에 먹이를 주는 행위'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동물애호가와 주민 사이의 갈등은 꾸준히 문제가 돼왔다. ‘캣맘∙캣대디’라 불리는 동물애호가는 길고양이에 먹이를 챙겨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주민은 발정기 울음이나 배설물 문제, 쓰레기 봉투를 헤집는 행위 등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한다.
동물 보호에 우호적인 한 네티즌은 지자체의 동물 관리 업무를 캣맘∙캣대디가 대신 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길고양이 보호 자원봉사자를 모집하는 지자체 사업을 사례로 들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은 지난 4월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해 먹이를 주고 위생을 담당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지자체의 업무에 길고양이 먹이 배급, 관리가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행위가 도시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캣맘∙캣대디의 활동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해외 사례를 인용했다. 미국에서 고양이는 연간 14억 마리의 새를 잡는 등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된다.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은 고양이를 세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일으키는 외래동물 100종의 하나로 지정했다. 호주에서는 200만마리의 고양이를 살처분하기도 했다.
■들고양이와 달리 길고양이는 생태계 영향 적어
서울시와 농림부는 지금까지 길고양이가 도심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분석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종찬 길고양이 연구자(전 서울연구원 안전환경연구실 연구원)는 호주나 미국의 사례를 우리나라 도심과 비교하기 다소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전 연구원은 지난 2016년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TNR)과 공존'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해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전 연구원은 도심이 단일한 생태계가 아닌 복합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것과 생태계 파괴의 연관성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도 도심에서는 이미 인간의 개발과 이용으로 인해 ‘생태계’라는 용어를 쓰기 어렵다고 말했다.
네티즌이 예시로 든 호주는 독자적인 생태계에 외래종인 고양이가 침범한 반면, 한국의 길고양이는 다른 생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도심을 영역화해 살고 있다. 이 전 연구원은 길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오해가 생긴 이유는 들고양이와 길고양이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이 둘은 생물학적인 차이가 없지만 서식지에 따라 분류된다. 주로 인간에게서 유기되는 장소가 도심이면 길고양이, 산 등이면 들고양이가 된다. 2019 반려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해 동안 전국에서 구조 및 보호된 고양이는 3만여 마리로 실제로 유기된 고양이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과 같은 야생환경에 방치된 들고양이는 산의 최상위 포식자로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야생생물법 24조에 따르면, 생태계 교란을 유발할 경우 야생화된 동물을 지정한다. 국립공원 등지에서 새나 개구리 등을 사냥하는 들고양이는 야생교란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길고양이는 서식하는 환경이 달라 ‘관리 동물’로 분류되지 않는다.
■길고양이 먹이주기, 동물 보호 취지 맞지만 지자체 소관은 아냐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먹이를 주는 행위가 ‘사람과 동물의 공존’이라는 동물보호법 목적에 부합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구체적인 업무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중성화 사업에도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지자체가 해야할 공익적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모든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거나 관리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동물보호법 14조에 시도 지자체가 유기동물을 구조,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돼있어 길고양이도 이에 해당된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길고양이는 법적으로 유기동물이 아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3조에서는 길고양이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명시해 보호 대상이 아니다.
다만 태어난 지 3개월이 안된 길고양이가 어미와 떨어져있는 등 특수한 상황에는 구조 대상으로 인정된다. 이런 경우 대상 동물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소로 옮겨져 지침에 따라 관리된다.
필수 업무는 아니지만 지자체 별로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을 지원하기도 한다.
네티즌이 사례로 든 부산시 기장군을 비롯해 서울시 등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운영 지원하고 있다. ‘공원 급식소 사업’은 주로 주거지와 떨어진 공원에 길고양이 급식소 설치와 운영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실질적으로는 동물보호단체와 자원봉사자가 먹이와 위생을 관리한다.
길고양이 급식소는 중성화 사업(TNR)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TNR은 ‘포획-중성화-방생’의 줄임말로 전국 지자체와 동물 보호 단체 등이 참여한다. 먹이를 주면서 중성화를 거치지 않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경계심을 줄여 손쉽게 포획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 ‘2019 반려동물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동안 전국에서 6만 4천여 마리 고양이의 중성화가 진행됐다.
중성화 사업은 도시에 서식하는 길고양이의 개체 수를 유지하고 울음소리나 공격적 성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유선 종양을 예방하고 발정기 싸움을 줄이는 등 동물 복지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주민 간 갈등 줄이는 공존의 노력 필요해
이 전 연구원은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하기 위해 ‘TNRM’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TNR에 관리(Managing)를 덧붙인 ‘TNRM’은 길고양이를 중성화해 개체 수를 유지하고 서식지의 위생을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관리’는 주민 갈등이 적은 공원 등에 먹이를 챙겨주고 주변환경을 관리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전 연구원는 고양이가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주거지에서 제거하더라도 또다시 유입되기 때문에 개체 수를 조절하고 환경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행위’가 중성화 사업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길고양이가 동물애호가들에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중성화를 위한 포획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길고양이를 포획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캣맘,캣대디)의 협조를 구할 때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전 연구원은 중성화를 무시하고 먹이만 주는 행위가 이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주거지에서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중성화하지 않으면 개체 수가 많아져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도 ‘길고양이 먹이주기’에 대해 문의하는 (캣맘,캣대디)에게 반드시 중성화를 함께 해주고 주변 환경을 깨끗이 관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가 필요한 경우, 각 지자체 동물 관련 부서에 전화해 신청할 수 있다.
moo@fnnews.com 최중무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