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우익 본능 노골적 표출...'재기 노리나'
2020.10.23 17:11
수정 : 2020.10.23 17:16기사원문
【도쿄=조은효 특파원】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우익 본색이 퇴임 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퇴임 후 한 달 만에 일본 우익의 성지인 야스쿠니 신사를 두 차례나 참배한 데 이어 이번에는 과거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군함도(하시마 탄광)등에서 겪었던 부당 차별대우, 가혹행위에 대해 "이유 없는 중상"이라고 강변했다.
23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을 전시한 도쿄 신주쿠구 소재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방문했다.
■군함도 왜곡 시설 방문
아베 전 총리는 이 센터에 상주하며 홍보하고 있는 군함도 원주민들에게 "이유없는 중상을 반드시 반격해 일본의 힘찬 산업화 행보를 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하시마에서 당한 부당 노동, 차별 행위를 '이유없는 중상'이라고 한 것이다. 또 센터에 전시된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대만 출신 징용노동자의 급여봉투 등을 가리키며 "역사의 진술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돼 나갈 것"이라고 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 시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을 홍보하는 시설로 지난 6월 개관했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 당시, "강제노역 현장인 군함도가 문화유산에 포함돼서는 안된다"는 한국의 반발이 걸림돌이 되자, "정보센터 설립 등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기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5년 뒤 문을 연 이 곳은 오히려 "군함도에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식의 하시마 지역 주민들의 주장들을 대거 모아 강제노역 역사를 왜곡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이 센터장은 스가 정권의 '입' 노릇을 하는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직전 아베 정권 당시 후생노동상)의 처형인 가토 고코가 맡고 있다.
아베 전 총리의 산업유산정보센터 방문은 최근 한 달 새 야스쿠니 신사를 두 번이나 방문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아베 전 총리는 앞서 지난 19일 야스쿠니 신사의 가을 제사 때에 맞춰 참배를 한 뒤 "영령들에게 존숭(존경과 숭배)의 염을 표하기 위해 참배했다"고 강조했다. 퇴임한 지 사흘 만인 지난 달 19일에는 야스쿠니에서 "영령들에게 퇴임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야스쿠니 신사는 도조 히데키 등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을 비롯해 근대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여명의 영령을 떠받드는 곳이다.
■스가 총리와 인터뷰 경쟁
우익 행보는 총리 퇴임 이후에도 자신의 정치기반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내년에 다시 총리직 복귀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최근 퇴임 한 달여간 니혼게이자이신문,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스포츠 닛칸 등과 잇따라 인터뷰를 하며, 경제, 외교 성과를 자랑하는 한편,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 종결됐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신임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인터뷰 지면을 아베 전 총리가 채워나가는 형국일 정도다. 일본의 한 유력매체 기자는 "대개 퇴임한 총리의 인터뷰 기사가 한 달 내내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아베 전 총리니까 가능한 것이다. 아직은 뉴스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달 초 8년만에 일본 양궁협회 회장에 재취임했으며, 2020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의 명예최고고문으로도 위촉됐다. 또 퇴임 직후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외교특사 등의 형태로 스가 정권을 돕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현실정치에 여전히 미련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일본 정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아베 전 총리 스스로는 총리직 복귀가 가능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두 번씩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 사임한 총리를 (일본 국민, 정가에서)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임기는 당초 아베 전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인 내년 9월까지다. 스가 총리가 재임을 바란다면, 내년에 자민당 총재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한다. 만일 아베 전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 다시 나와, 4번째 총리직에 도전한다고 해도 자민당 연임 규정에 아무런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사임 전까지는 자민당의 '3연임' 규약에 묶여있었으나 1년짜리 스가 정권이 중간에 끼어들어감에 따라, 4연임 제한 문제가 자연히 사라진 것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