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연대 기부금 유용' 논란과 나눔문화

      2020.11.18 18:00   수정 : 2020.11.18 18:00기사원문
쌀쌀한 날씨에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겨울 풍경 중 하나는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 나눔활동이다. 광화문광장의 사랑의 온도계와 거리의 구세군 자선냄비는 기부의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연탄 나르기와 김장 담그기 등 자원봉사 활동의 미담도 훈훈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나눔은 단순히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복지욕구를 충당하기 위한 자원의 중요한 한 축이다.
2018년 공동모금회 나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현금기부와 자원봉사를 합한 2017년 개인 나눔자원 총량은 약 5조4000억원에 이른다. 기업의 기부금은 약 3조9000억원이다.

개인과 기업을 합한 나눔자원 총량인 9조3000억원 규모는 당시 정부 사회복지예산 119조원의 8%에 육박한다. 또 한국 가이드스타의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2019년 공익법인 수는 약 9600개이며, 총수입은 167조원으로 명목 국내총생산(GDP, 1893조원)의 약 9%를 차지할 정도로 그 경제 규모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민간 나눔자원이 상당한 수준인 것은 틀림없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아직 더 성장할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계나눔지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최근 10년 동안 우리나라의 나눔 수준은 조사에 포함된 126개국 중 57위에 머물고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임을 자랑하기에는 나눔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아직 낮다.

우리 사회의 나눔이 더욱 늘어야 할 시점에 최근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의 기부금 유용 논란이 나눔영역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실제로 비영리단체의 투명성에 의구심을 가진 국민이 많아져 기부가 중단되는 일도 있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축될 수 있는 기부와 자원봉사에 정의연의 기부금 유용 논란으로 이번 겨울 나눔의 온기가 사라질까 우려된다.

비영리단체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정부는 회계감사를 강화하고 '기부금 통합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국회에서는 영리부문에 적용 중인 표준감사시간 제도를 비영리 부문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하는 일명 '정의연 부실회계 방지법'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기부금의 투명성 확보는 나눔 확대를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정의연 사건과 같은 극소수의 문제 때문에 선량한 다수 비영리단체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회계감사 제도를 획일적으로 엄격히 강화하면 영세한 소규모 비영리단체는 그 부담을 감당할 방법이 없어 문을 닫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다. 기부금 용처에 대한 잣대를 극단적으로 가져가 기부금 전액이 취약계층 수혜자에게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 그 일을 감당할 필수인력조차 운용할 여력이 없어진다. 사회복지는 사람 손이 많이 가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분야다. 기부금의 사업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양질의 인력은 필요하다.

나눔은 단순히 사회복지 자원조달 차원을 넘어 사회적 안정과 사회통합을 위해 필요한 건전한 사회문화와 사회심리 조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나눔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하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중요한 기제다. 지나친 통제와 감시는 나눔문화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기부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대책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나눔을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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