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김치 국제표준? 파오차이는 피클...또 '원조' 주장(종합)
2020.11.29 16:24
수정 : 2020.11.29 18:01기사원문
【베이징=정지우 특파원】중국이 자국의 절임식품인 파오차이(泡菜, paocai)에 대한 국제 인증을 받았다. 파오차이는 중국에서 김치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유산균이 거의 없어 김치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한국은 김치(kimchi)에 대한 국제 표준을 이미 20여 년 전에 획득했다.
■파오차이는 김치보다 피클
29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 등에 따르면 중국 시장 관리·감독 전문 매체인 중국시장 감관보는 중국이 주도해 파오차이 산업 6개 식품에 대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국제표준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ISO 파오차이 국제 표준 제정에는 중국과 터키, 세르비아, 인도, 이란 등 5개 ISO 회원국이 참여했다. 김치 종주국인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중국은 자국 파오차이 산업을 이끄는 쓰촨성 메이산시 시장감독관리국을 앞세워 ISO 표준 제정 작업을 진행해 왔다.
‘파오차이 국제 표준 제정’ 안건은 지난해 6월8일 ISO 식품제품기술위원회 과일과 채소 및 파생 제품 분과위원회를 통과해 정식 추진됐고 1년 5개월여 만에 ‘ISO 24220 파오차이 규범(염장발효야채)과 시험방법 국제 표준’으로 승인을 받았다.
중국 매체는 중국의 파오차이 산업이 국제 김치시장에서 기준이 된 것 같은 뉘앙스로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중국산 김치 수입 규모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며 '김치 종주국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파오차이와 김치는 다르다. 파오차이는 중국 전통식품인 염장채소다. 배추나 무를 소금물에 절인 뒤 고온에서 끓여서 식힌 바이주, 산초, 팔각, 매운 고추, 생강, 설탕 등의 혼합 액체를 부어 절여 뒀다가 먹는다. 이 때문에 유산균이 거의 없다. 보통 2~3일이면 바로 섭취 가능하다. 김치 보다는 '피클'에 가깝다.
■中기준없어 파오차이 단어 써와
또 ISO의 문서에도 김치가 아니라 파오차이로 명시하면서 해당 식품규격이 김치(Kimchi)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아울러 중국이 주도한 파오차이 ISO 국제표준 제정 과정에서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만약 중국 논리대로라면 한국도 동참해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김치 종주국이 파오차이 제조법 표준제정에 구태여 참여할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중국이 국제표준이라고 주장하는 ISO는 비정부기구다. 농수산 가공식품이 아니라 주로 공산품에 적용되는 인증을 담당한다. 중국은 ISO 상임이사국이다.
즉 파오차이가 ISO 국제표준을 받았다고 해서 중국의 파오차이 제조 방식이 김치 국제표준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이 ISO에 정회원으로 활동한다. 기표원이 파오차이 ISO 국제표준 획득 과정에 어떤 입장을 표명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ISO에서 제정되는 내용은 파오차이에 관한 사항"이라며 "이는 쓰촨의 염장채소"라고 전했다.
반면 이미 한국의 김치는 20여 년 전인 2001년 국제식품규격(CODEX)로부터 국제표준으로 인정을 받았다. 코텍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AC)의 공식 국제식품규격이다. 코덱스 인정을 받으면 각국에서 식품을 관리할 때 일종의 지침으로 적용할 것을 권장한다. 최근에는 국제간 공통 적용되는 식품 규정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국에서 파오차이와 김치라는 용어를 혼용해 쓰는 것은 한국 기업이 중국에 김치를 수출할 때 중국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별도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 김치를 주문할 때 통상 한국 파오차이라고 칭한다.
중국은 1500여년 전에 쓰촨성에서 만들어진 파오차이가 한국으로 넘어갔다거나, 당나라 장군이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충칭의 절임채소가 함께 전파돼 김치의 기원이 됐다는 설을 끊임 없이 퍼트려왔다.
한국 고유 식품·문화에 대한 중국의 ‘원조’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한국의 한복을 중국 명나라 때 입던 ‘한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동요 반달의 뿌리가 중국이라고 소개되기도 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아리랑조차 그 유래가 중국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중국 한 포털사이트에선 축구 스타 손흥민의 조상이 중국인이었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