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에 흠뻑 빠졌었다"...후임 일본대사는 '한류팬'?
2020.12.08 18:10
수정 : 2020.12.09 00:21기사원문
【도쿄=조은효 특파원】 "일본에 와서도 한동안 한국은'내 맘 속의 붐'이었습니다."
미국 대사로 내정된 도미타 고지 주한 일본 대사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아이보시 고이치 주 이스라엘 일본대사(61)가 과거 '한류팬'임을 자처한 글이 새삼 이목을 끈다.
과거 두 차례나 한국 근무 경험이 있어, 상대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이보시 대사는 두 번째 한국 근무시기(주한 일본대사관 공사)였던 2008년 3월 주한 일본공보문화원 홈페이지에 '슬픈 한국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한국 영화, 한국 음식, 한국 노래 등을 즐기게 됐음을 소개했다.
그는 "해외 출장시 비행기 안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출장지에서 현지 한국 요리점을 꼭 들렀기에 때로는 동행에게 폐를 끼치는 일도 있었지만 한국 문화에 흠뻑 빠져들어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로 나리타공항에서 바로 신승훈 콘서트장에 가기도 했다"고 적었다.
아이보시 대사는 첫 한국 근무(1999년1월~2001년 4월)전까지만 해도 외무성 내에서 프랑스어 연수자로 한국과 거리가 멀었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한국 발령을 받았다. 파리 근무 당시, 한국 부임 발령을 받고 프랑스인이 보는 한국어 입문서인 '마드모아젤(mademoisell) = 아가씨(agassia)'을 사서 봤지만, "서울에 부임한 뒤 바로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버렸다"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곁들였다.
노래를 한 곡 외우면 그 만큼 한국어가 향상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많은 음악CD를 구입해 가사를 사전으로 찾아보고, 노래방을 다니는 등 한국어와 씨름을 하던 중 "일본으로 귀국하라고 해서 미련을 남겨둔 채 서울을 떠났다"고 썼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 귀국하니, "케이팝(K-POP), 한류영화, 드라마와 더불어 일본서점에서는 한국문화를 소재로 즐겁게 배울 수 있는 한국어 교재가 넘쳐났고, 신오쿠보에 가면 최신CD와 비디오도 입수할 수 있어 최근의 젊은이들 말로 일본에 와서도 한동안 한국은 '내 맘 속의 붐'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본격 한류가 불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의 상황이다.
이후 2006년 두 번째 한국 부임이 결정된 후, "한국이 너무 좋아 한국근무를 강력하게 희망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듣지만 솔직히 두 번째 한국근무는 예상 밖이었다"며 "이번에야말로 한국어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부임했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NHK는 8일 "주한 일본 대사에 아이보시 대사를 기용하는 방향으로 조정에 들어갔다"며 "태평양전쟁 중 징용을 둘러싼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 일·한 관계가 냉각 중인 가운데 한국 주재 경험이 풍부한 아이보시 대사를 기용해 사태 타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이보시 대사는 한국에서는 1999년 1월 1등 서기관으로 부임, 이듬해 참사관으로 승진해서 2001년 4월까지 1차 근무를 마쳤다. 이후 5년 뒤인 2006년 8월 정무공사로 두번째로 부임, 2008년 9월까지 근무했다. 이번에 대사로 부임하면 세번째 부임인 것이다.
첫 부임은 김대중 정권 때였으며, 두번째 부임은 노무현 정권 후반기와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와 겹친다. 공교롭게도 한국 진보정권 집권기와 시기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이보시 대사는 외무공무원채용상급시험(외무고시 격) 합격 후 외무성에 들어가 프랑스 연수를 마치고 주 프랑스 대사관에서 첫 해외 근무를 시작했다. 주 한국 일본대사관 공사, 주 베트남 공사, 외무성 대신관방 심의관, 국제협력국장겸 중동아프리카국장보, 주 아세안 대사, 외무성 영사국장 등을 거쳐 2018년 7월부터 주 이스라엘 대사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부임한 도미타 대사는 1년 만에 주미 대사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정권 때 외무성 북미국장을 지내, 바이든 신정권에서도 많은 파이프라인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