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만 따라도 30년맛집 낙지볶음…청양고추 더하면 별점 추가요~

      2021.01.22 04:00   수정 : 2021.01.22 03:59기사원문
가정간편식(HMR) 시장의 1세대로는 햇반과 카레가 꼽힌다. 2세대는 냉동식품, 3세대는 컵밥과 국, 탕, 반찬등 가열조리 제품이고, 4세대는 유통업체의 PB 또는 맞집과 콜라보(협업)로 만든 제품이다. 그 다음 5세대가 밀키트(Meal-kit)다.

밀키트는 한 끼 식사를 해결할 때 요리하는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손질이 끝난 식재료와 양념 등을 넣고 정해진 순서대로 조리하기만 하면 된다. 개인의 취향에 맞게 특정한 재료나 양념을 더할 수도, 뺄 수도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밀키트는 '요알못(요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아내의 입에서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해볼게"라는 말이 나오도록 만드는 '마법의 지팡이'와 같다.

메뉴 선택은 아내와 협의를 거쳤다. 낙지볶음, 마파두부, 비프 팟타이, 스테이크, 떡볶이, 감바스 등 9개를 고른 후 첫 구매혜택으로 부대찌개를 단돈 100원에 추가해 10개를 채웠다.

국내 밀키트 시장에서 70%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프레시지(fresh easy)의 여러 밀키트 제품이 아내의 손을 거쳐 어떤 음식으로 탄생할지 궁금하다. 요리에 대해서 만큼은 워낙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라 사실 기대보다 걱정이 열 걸음은 앞선다.

■매콤한 낙지볶음에 소주 한 잔

첫 타석에 등장하는 선수는 아내가 좋아하는 낙지볶음이다. 금요일 저녁, "한 주간 고생했다"며 아내가 소주 한 잔과 함께 조리에 나섰다.

프레시지의 낙지볶음은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경기 화성의 낙지요리 '노포(대를 이어 내려오는 점포)' 이화횟집의 시그니쳐 메뉴다. 실제 매장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와 대를 이어온 '비법'의 양념을 그대로 적용했단다. '맵부심(맵다+자부심)'이 강한 아내는 기대치가 쑥~ 올라간다는데 '맵찔이(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인 나는 두려움이 쓱~ 밀려온다.

차려놓고 보니 제법 먹음직스럽다. 웬만한 낙지요리 전문점에 뒤질 것이 없어 보인다. '아내가 요리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낙지가 섭섭지 않게 들었다. 쫄면이 입맛을 돋운다. 낙지만 골라 둘이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남은 소스에 밥을 비비니 이게 꿀맛이다. 매운 맛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아내가 김을 꺼냈다. 이 조합 아주 칭찬할 만하다. 남의 속도 모르고 아내는 "청양고추를 더 넣을 것 그랬다"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소비자가 매운 정도를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사에 꼭 쓰라는 지시다.

■유명 음식점의 맛을 집에서 즐기다

다음날 딸이 집을 비운 틈을 이용해 아내와 단둘이 '재택맛집투어'를 하기로 했다. '나의 선택'은 마파두부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있는 36년 전통의 중식당 '백리향'의 맛 그대로란다. 백리향에서 마파두부를 먹어본 기억은 없지만 워낙 이름난 곳이라 군침부터 돈다.

포장지에는 '3인분'이라고 적혀 있다. 가볍게 무시해준다. "우리를 뭘로 보고"라며 아내가 코웃음을 쳤다. 설거지 거리를 줄일 요량으로 마파두부덮밥을 만들었다. "역시 2인분이네" 아내의 말이다.

산초향이 훅~ 치고 들어온다. 첫 인상이 강렬하다. 몇 숟갈을 뜨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아주 맵지는 않은데 혀가 살짝 얼얼하다. 아내는 "산초향미유를 반만 넣었어야 했다"며 애먼 레시피로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5분이 넘도록 부부는 말이 없다. "달그락" "땡" 숟가락, 젓가락이 접시와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히 들릴 뿐이다.

'아내의 선택'은 국민간식으로 불리는 떡볶이다. 사리면을 포함하면 혼자 먹기엔 많고, 둘이 먹기엔 약간 부족해 보인다. 레시피에는 물 600mL를 부으라고 돼 있는데 딱 봐도 '홍수'다. 아내는 "계량컵이 없으니 정확한 양을 잴 수가 없다"며 투덜거린다. 제일 좋은 해결책은 라면을 하나 더 넣는 거다. 둘이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테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빨간 국물의 유혹이 아주 강렬하다. 이제부터는 '젓가락전쟁'이다. "내가 딱 좋아하는 어묵이야" "국물이 진짜 맛있다" 아내의 입에서 연신 칭찬이 쏟아진다. 적당히 매운데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다. 나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은 채 떡볶이에 집중한다. 뭐든 먹을 때 말이 많으면 손해다. 그 만큼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이 "밥 먹을 때 말하지 말라"고 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저녁을 대신할 비프 팟타이는 둘이 의견일치로 골랐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도 못가는데 음식이라도 맛보자"는 취지다. 향신료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내가 좋아하는(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남아 음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프레시지 홈페이지에는 "태국 방콕의 유명 레스토랑 바이 부아(by BUA)에서 레시피를 전수받았다"고 쓰여 있다.

조리도 간단하다. 프레시지가 준비해준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볶으면 된다. 10여분 만에 아내가 팟타이를 뚝딱 만들어냈다. 아내가 '일류요리사'처럼 보이기는 결혼 후 10여년 만에 처음이다. 말 없이 냉장고에서 캔맥주 두 개를 꺼냈다. 나의 센스도 아내 못지 않다.

차가운 맥주 한 잔에 팟타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여느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아쉬운 점은 숙주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내의 솔직한 평가다.

■감바스에 바게트는 두 번 먹어도 진리

스페인 요리 '감바스 알 아히요'는 홈술에 맛을 들인 아내가 '와인 한 잔'을 위해 골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침식사 대신이다. 감바스란 이름은 귀에 익숙하지만 실제 먹어본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감바스(gambas)는 스페인어로 새우를, 아히요(ajillo)는 마늘을 뜻한다고 네이버가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통통한 새우에 버섯, 브로콜리, 마늘에 로즈마리, 홍고추까지 실하게 들었다. 바게트를 찍어서 먹고, 새우와 야채를 올려서도 먹으니 향과 맛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혹시나 해서 바게트를 하나 더 사오길 참 잘했다.

처음부터 '머쉬룸 가득 바게트볼'과 '갈릭 가득 바게트볼'은 모두 내 거라고 외쳤다. 빵을 좋아하는 '빵돌이'로서 기대가 아주 크다. 그리고 둘은 정확히 110% 기대에 부응했다. "맛있다"는 말까지 위장 속으로 흡수돼버렸다. 원래는 감바스와 같이 먹으려 했는데 기회조차 없었다. 딸과 아내의 매서운 눈초리에 절반 이상 양보한 것만 빼면 아주 칭찬할 만한 아침식사다.

포부두닭갈비는 포두부가 궁금해서 골랐다. 처음 접하는 포두부의 고소함이 일품이다. 포두부의 양이 더 많아도 좋을 것 같다. 치즈떡과 쫄면을 먹다보니 전날 먹은 떡볶이가 생각난다. (내입맛에)매콤하기는 마찬가지다. 닭고기까지 골라 먹은 다음 남은 소스에 밥을 비볐다. 닭갈비전문점에서 먹는 볶음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핵존맛(완전 맛있다)'임에는 틀림 없다.

부대찌개는 유통기한에 쫓겨 '요리를 잘하는' 처제에게 넘어갔다. 고등학생 조카와 한 끼 잘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처제도 라면사리를 하나 더 넣었다는 후문이다.
스테이크는 2개를 주문했는데 어느새 냉장고에서 자취를 감췄다. "아빠, 스테이크 진짜 맛있어요. 또 사주세요"라는 딸의 민원이 없었다면 주문한 지도 몰랐을 뻔했다.


다음에는 △아내가 곱창을 싫어해서 포기한 장흥회관의 낙지곱창전골 △ 튀기기가 귀찮아 마음을 접은 지동관의 깐쇼새우 △가격이 부담스러운 백리향의 난자완스와 파빌리온의 양갈비를 꼭 만나보리라. 마음이 저만치 앞서 가는 아내가 "빨리 주문하라"고 재촉한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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