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한소 정상회담 암호명 '태백산' 극비리 진행

      2021.03.29 15:01   수정 : 2021.03.29 15:0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1990년 6월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만난 한·소 정상회담이 암호명 '태백산'으로 두 달간 극비리에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이 한·소 관계 정상화 땐 사절단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반발하자 소련이 마지막까지 '완벽한 보완'을 요구한 데 따른 것으로 회담 장소와 시간이 이틀 전에야 결정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한소 정상회담 준비 과정과 기본 문서와 자료, 후속조치 및 홍보, 지역별 반응 등이 담긴 1990년 생산 외교문서 2090권, 33만쪽 분량을 29일 일반에 공개했다.



한·소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은 '태백산'이라는 암호명으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1990년 4월 7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 간 미·소 정상회담이 한·미 정상회담 다음 날인 5월30일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소 정상회담 추진을 지시했다.

소련이 극비 추진을 요구한 것은 당시 맹방이었던 북한이 한·소 관계 정상화에 대한 반발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1989년 1월 쌍용건설 초청으로 방한한 미구엘 스테클로프 고문은 "1989년 1월 세바르드나제 외상의 소련 방문시 김일성 주석과 최근 소련의 대한 정책에 대해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미구엘 고문은 "김일성 주석은 만일 소련이 헝가리식의 대한국 관계 정상화 시에는 모스브타 주재 대사관 이외 공식 사절단의 전원 철수로 소련 외상을 위협했다"고 밝혔다.


실제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5월31일 회담 소식이 전해지자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소련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회담 직후에는 김희수 주소련 북한대사대리가 소련 외무성을 방문해 "한소 정상회담은 한반도에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남북한 간 첨예한 대립을 조장시킬 것"이라고 항의했다.


이처럼 북한의 반발 속에서도 한국과 소련은 정상회담에 이어 1990년 9월 30일 유엔 본부에서 역사적인 국교 수립을 선언한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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