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스타트업, 스팩 상장 등 돌려...'번거롭고 불편해'
2021.05.24 13:46
수정 : 2021.05.24 13:46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올해 초 미국과 한국 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미 증시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들이 창업초기기업(스타트업)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손쉬운 기업공개(IPO)를 위해 스팩과 손잡았더니 엄격해진 규제와 까다로운 투자자들에게 시달리면서 이중고를 겪게 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미 스타트업 관계자들을 인용해 최근 스팩들이 상장할 스타트업을 구하지 못해 발만 구르고 있다고 전했다.
스팩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다. 투자자들은 우선 돈을 모아 스팩을 만들어 상장한 다음 자금 모집 당시 목표로 밝힌 실제 기업을 기한 내에 합병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복잡한 절차 없이 비상장 우량기업을 손쉽게 상장기업으로 만들 수 있고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긴다. 미국과 한국의 개인투자자(개미)들은 공식적인 상장 및 공모보다 손쉽게 신규 상장주를 얻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스팩 투자에 열광했다. 지난 1년간 세계 증시에서 신규 상장에 몰린 자금 2300억달러(약 259조원) 가운데 절반은 스팩으로 모였다. 대부분의 스팩 우회 상장은 미 증시에서 이뤄졌다.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 루시드웍스의 윌 헤이스 CEO는 최근 몇 달 동안 스팩 기업 2곳과 상장 논의를 했지만 2곳 모두와 협상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공유사무실 기업 인더스트리어스의 제이미 호다리 CEO는 지난 1년 동안 30곳의 스팩에서 합병 제안을 받았고 일부와 접촉하긴 했지만 전부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펙 사람들이 처음에는 회사에 관심 있는 척 했지만 대부분 합병과 상장을 통한 수익만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WSJ는 스타트업이 스팩을 멀리하는 첫번째 이유로 규제를 꼽았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12일 발표에서 스팩 기업이 투자자들에게 팔거나 나눠주는 신주인수권을 특정 상황에서 자본이 아니라 부채로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SEC는 회계 지침 변경을 알리면서 공정가치 변동분을 주기적으로 회계에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또 다른 이유는 과도한 관심이다. WSJ는 스팩으로 상장한 스타트업에 출자한 투자자들이 기업 성과에 매우 민감하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회사와 투자자 사이에서 수탁책임 위반이나 부적절한 발언, 이사진 분쟁 등의 문제로 소송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미 실리콘뱅크은행에 따르면 2020년에 스팩으로 상장한 기업 가운데 약 50%가 목표 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했고 42%는 상장 이후 1년간 매출 악화를 예상했다. 미 플로리다 대학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부터 올해 4월까지 스팩을 통해 상장한 기술 분야 스타트업 44개사의 주가는 평균 12.6% 하락했다. 또한 이달 17일 기준으로 주가가 20% 이상 떨어진 기업이 절반 이상이었다. 같은 정규 상장 절차를 거친 기술 기업 77곳의 주가는 10.7% 내려갔다.
이와 관련해 아파트 공유업체 커먼리빙의 브래드 하그리브스 CEO는 최근 6개월 동안 스팩 10곳의 합병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다음 분기에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매우 정확한 수준으로 알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호되게 비난받는다”고 말했다. 헤이스 역시 스팩 상장에 대해 “지름길 같지만 갈수록 불편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WSJ는 이제 스타트업 CEO들이 스팩 대신 전통적인 벤처 자본이나 사모펀드에 손을 내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헤이스는 3~5년 안에 회사가 준비가 되거든 상장에 나서겠다며 지금은 아니라고 말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