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예루살렘 포기않는 이스라엘… 더 멀어진 '이-팔 2국가 해법'
2021.05.30 17:12
수정 : 2021.05.30 17:12기사원문
이스라엘 국책 연구소인 베긴·사다트 전략연구소는 지난 2014년 보고서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전략을 "잔디깎이"라고 표현했다. 일정기간 가자지구를 군사적으로 통제하다가 무장정파 하마스가 적대적인 행동을 하면 압도적인 공세로 하마스의 군사력을 망가뜨리고 다시 당분간 평화를 유지한다는 전략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달 10~20일 사이 양측에서 약 26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자지구 충돌 직후 휴전과 관련해 "작전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찬했다.
■반세기 넘게 엉킨 갈등
갈등의 시작은 1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꺾으려던 영국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랍계 주민들 모두에게 오스만에 맞서 봉기하면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이중계약을 맺었다.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로 차지한 영국은 어느새 몰려든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분쟁을 중재하지 못했고 양측은 민병대를 조직해 싸웠다. 이후 유엔은 미국과 소련 주도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워 영국령을 양분하는 합의안을 내놨지만 좌초됐다. 유대계 주민들은 1948년 영국군 철수와 동시에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고 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주변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 민병대를 돕기 위해 파병했으나 참패했다.
이스라엘은 전쟁 이후 이집트 손에 넘어간 가자지구와 요르단 점령지로 남은 동예루살렘 및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지역 78%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집트와 요르단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역을 점령한 뒤 기존 아랍계 거주 구역에 정착촌을 세워 해당 지역을 유대인 소유로 바꿨다.
이달 충돌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의 셰이크자라에 정착촌을 짓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쫓아내면서 시작됐다. 거주민들은 3차 중동전쟁 이전에 요르단 정부의 허가를 받고 집을 지었다고 항변했으나 이스라엘은 해당 지역이 원래 유대인 소유였다며 이들의 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달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마지막 금요일이었던 7일,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에는 7만명 이상의 신자들이 모여 이스라엘의 횡포를 비난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군은 최루탄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했고 하마스는 셰이크자라 문제와 더불어 이스라엘군이 라마단 기간에 성지를 침범했다며 무차별적인 로켓 공격을 시작했다.
■하마스의 두 얼굴
현재 유엔이 인정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관할 구역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지만 가자지구는 PA가 아닌 하마스가 다스리고 있다. 하마스는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1987년 독립해 결성된 무장정파다. 과거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하부 조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싸웠지만 PLO가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으면서 정치적 입지가 줄었다. 이스라엘은 당시 PLO와 평화협정을 맺고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자치권을 보장하면서 향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하마스는 PLO가 자치정부로 격상된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부정하며 무장투쟁을 계속했고 이스라엘군이 2005년 가자지구에서 철군하자 지역 군벌로 자리잡았다. 하마스는 2006년 PA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PA를 주도하는 온건 세력인 '파타'당과 갈등했다. 결국 하마스는 2007년 가자지구에서 내전을 일으켜 PA를 몰아낸 뒤 이듬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쟁(가자전쟁)을 개시했다.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한 이스라엘은 전쟁 이후 가자지구를 철저히 봉쇄했으며 다른 국경을 맞댄 이집트 역시 이스라엘을 의식해 가자지구와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97년에 하마스를 테러단체로 지정했고 유럽연합(EU)도 2001년에 하마스를 테러단체 명단에 올렸다.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싸울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정작 365㎢ 면적에 200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사는 가자지구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했다. 하마스는 2000년도 초반까지 미성년자를 동원해 이스라엘 민간인을 상대로 자폭테러를 벌였다. 동시에 이슬람 원리주의를 강요하면서 가자지구를 철권통치했다. 반대세력을 무차별 체포하는 한편 이스라엘을 주기적으로 도발해 주민들의 생활이 더욱 나빠진다는 비난도 있다. 미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의 63%가 하마스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더욱 멀어진 '2국가 해법'
하마스는 20일 휴전 직후 압도적인 인명피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자축했다. 가자지구 하마스 지도부의 칼릴 알하야는 "오늘 우리는 적들을 향한 저항의 승리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서방 언론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과 충돌할 때마다 하마스 지지세력이 늘어난다며 특히 이번 충돌의 경우 국제적인 홍보전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폭격 이후 피해 집계에서 꾸준히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를 강조하며 동정심을 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보도에서 최근 SNS로 무장한 팔레스타인 청년들 사이에서 2국가 해법이 아닌 단일국가 건설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셰이크자라 난민 출신이자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100만명에 이르는 23세 운동가 무나 엘 쿠르드는 "세상에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없다"며 "강(서안지구)부터 바다(가자지구)까지 모두 팔레스타인이다"고 외쳤다.
이러한 움직임에 가장 난처해진 세력은 2국가 해법을 추진했던 PA와 파타당이다. PA는 2007년 하마스와 내전 이후 선거를 중단했고 올해 5월과 7월에야 겨우 각각 총선과 대선을 치를 예정이었으나 이번 선거 역시 무기한 연기됐다. 현지 관계자들은 하마스가 이번 충돌로 큰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으로 15년 가까이 선거 없이 사실상 서안지구 관리조직으로 전락한 PA의 입지가 위태로워졌다고 분석했다.
과거 오슬로 협정을 고안했던 이스라엘의 요시 베일린 전 경제기획부 장관은 단일국가 건설 요구에 대해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이스라엘은 현재 역내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고 절대로 우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SJ는 만약 팔레스타인에 단일국가가 들어선다면 주변국에 흩어졌던 아랍계 난민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유대인 사회가 소수민족으로 전락한다며 이스라엘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예측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