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영웅’ 오사카 나오미의 반란

      2021.06.01 18:00   수정 : 2021.06.01 19:43기사원문
"밀레니엄(M)세대의 영웅이 또 한 명 탄생했다."

카리브해 아이티 출신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1997년생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가 지난해 여름 그랜드슬램 중 한 곳인 US오픈에서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쥐자 일본의 한 논평가는 그에게 영웅 칭호를 붙여줬다.

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뒤 줄곧 이중국적자였던 그는 22세 때 돌연 일본 국적을 택했다.

일본어를 잘 못하는 혼혈 테니스 여제를 향해 일본 기자들은 곧잘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본인으로서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좋아하는 일본어 단어가 있느냐" 그가 과연 일본인인지, 확인하고 싶어했다.
장시간 비행과 시차 탓인지 오사카 선수는 "졸립다"면서 영어로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답변을 내놓곤 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정체성 논란은 사그라드는 듯 보였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기도 했고, 그 덕인지 특유의 강한 자기 주장이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1020세대인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가 오사카 나오미를 사랑하는 '6가지 이유'가 지목되기도 했는데, 선수로서 뛰어난 기량, 인종차별 문제에 목소리를 냈던 발신력과 인간적 강인함, 재치와 겸손함, 뛰어난 패션센스 등이다.

그는 인종차별에 저항, US오픈 7경기를 치르는 동안 인종차별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착용한 바 있다. 일본 스폰서 기업이 만화 광고물에서 자신의 피부색을 하얗게 해서 내놓자, "누가 봐도 내 피부는 갈색이다"고 당당히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우승 뒤 일본 국민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고작 "아이 라이크 스시(I like sushi)"라는 단문에도 일본 국민들은 여자프로테니스(WTA) 세계 랭킹 2위 '보유국', 다양성을 품은 사회로 격상되는 듯한 기분과 함께 자부심 넘치게 그를 바라봤을 것이다.

'그랬던' MZ세대의 표상이자 롤모델인 오사카가 최근 프랑스오픈에서 사상 초유의 '인터뷰 안할 권리'를 주장한 것을 놓고 일본 사회의 시선이 꽤나 복잡하다. 오사카는 "구식 규정은 바꿔야 한다"며 이 대회의 규칙인 '경기 후 기자회견' 실시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개는 "제멋대로다" "프로의식이 부족하다" "주변 어른들이 잘 지도했어야 했다" "(제멋대로인 게) 미국인 마인드 같다"는 반응이다.

최근 일본의 한 언론인과 한국 MZ세대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성과급 약속을 지키라"며 경영진에 당당히 항의 표시를 하는 한국 MZ세대가 흥미로운 듯했다. 일본 기업들도 최근 인사정책상 MZ세대 연구에 착수한 모습이다. 아직까지는 '특징 없이 조용하다'는 게 중론이나, 변화는 분명 일고 있다고 한다. 이 MZ세대 내부에서도 크게는 '무기력파'와 '적극파'로 나뉘는데, 수직적 질서에 비순응적 내지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은 공통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는 '영어하는 일본인' 오사카 나오미가 일본의 MZ세대, 기성세대에게 일정한 외부충격을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인적 관점에서 구질서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미 MZ세대의 반란에 놀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역시 '새로운 에너지'와 마주하게 된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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